3년 만에 신작 장편 출간
"아이 돌보는 노년 여성에 집중
보이지 않는 노동 기억해야"
[ 은정진 기자 ] “단순히 허상 속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상상하는 게 아니라 지금 살고 있는 한국 사회를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밀리언셀러 《82년생 김지영》의 작가 조남주(사진)가 3년 만에 신작 장편소설을 들고 돌아왔다. 조 작가는 28일 장편 《사하맨션》(민음사)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소설 속 소수자들을 통해 당장의 현실은 퇴보하는 것 같지만 역사는 조금씩 자리를 바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하맨션》은 살기 힘든 지역을 은유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일교차가 100도가 넘는 러시아 사하 연방 공화국에서 제목을 따왔다. 소설 속 배경은 한 기업이 인수한 시공간 미상의 한 도시국가 속 퇴락한 맨션이다. 30년 동안 맨션에 들어온 사람들은 주민권은 물론 체류권도 갖지 못한 채 국가 시스템 밖으로 내팽개쳐져 ‘사하’라고 불리는 난민 공동체를 이뤄 살고 있다. 소설은 발전과 성장의 가치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거부당한 소수자인 ‘사하’들의 시선을 통해 스스로 죄인이 돼 비참한 생의 종착지이자 그들에게 허락된 마지막 공동체로 떠밀려 오게 된 부조리한 현실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그는 “소설 속엔 밀입국한 인물도 있어 최근 국내에서 이슈가 된 난민과 연결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노인, 여성, 아동, 장애인, 성소수자 등이 살아가는 모습을 염두에 두고 썼다”고 말했다.
조 작가는 풍부한 자료와 통계들을 바탕으로 쓴 《82년생 김지영》과 달리 《사하맨션》에선 가상의 디스토피아를 창조했다. 그는 “스스로 이해되지 않고 받아들이기 힘든 것들을 따로 떼서 다른 시공간에 넣으면 지금 가진 감정이나 부조리로 느끼는 점들이 다르게 보일까 하는 믿음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조 작가는 이전에 홍콩령에 속해 있지만 중국 내 지역에 있어 홍콩 정부와 중국 정부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했던 작은 주거지 ‘구룡성채’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했다. 그는 “국가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면서 실제 생활이 가능할 것이란 개연성을 준 장치가 구룡성채였다”고 설명했다.
소설은 ‘사하’들의 절망감을 통해 공동체에서 소외된 삶을 사는 이들의 현재와 미래를 상상하게 한다. 인간성이 파괴된 디스토피아를 그려낸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와 가난한 사람들의 인간애를 다룬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이 떠오른다. 그는 “비주류 사람들을 보호해주고 기본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보호해주는 사회에 대한 고민과 두려움에서 소설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소설은 낙태, 보육 이슈와 같은 사회의 담론을 녹여 우리가 잃어버린 ‘돌봄의 공동체’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중 집중한 대상은 ‘노년 여성’이다. 소설 속엔 사하맨션 안에 버려진 아이들을 돌봐주는 할머니들이 연달아 나온다. 조 작가는 “한국 사회에서 보육문제를 떠맡고 있는 게 노년 여성이란 걸 부인하기 어려운데도 이들 세대가 관계를 맺고 서로 의지하며 연대하는 모습은 잘 언급되지 않고 있다”며 “보이지 않는 이들의 노동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등장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누적 판매량이 100만 부를 넘었고 일본에서도 13만 부가 팔린 《82년생 김지영》의 인기로 인해 후속작 집필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을까. “부담감보다는 ‘소설이라는 게 사회에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 계기가 됐어요. 소설을 통해 의견을 나누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사회를 함께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 거죠.”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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