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전쟁 와중에 한국이 최대 피해국으로 지목되면서 원·달러 환율이 치솟고 있습니다. 단기간에 4% 가량 신흥국 통화 가운데에서도 가장 많이 오른 통화로 꼽히고 있습니다.
가장 맞추기 힘든 게 환율이라고 하죠. 워낙 여러가지 변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월스트리트에서 신흥국 통화를 담당하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최근 원화 가치가 폭락한 건 미·중 무역전쟁 악화로 촉발됐다고 밝혔습니다.
양국 협상이 단기에 해결될 가능성이 사라지자 월스트리트의 환 트레이터들은 양국 관세전쟁이 본격화되면 미·중 당사국 외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국가를 골라냈다고 합니다.
대만과 한국, 말레이시아 등으로 분석됐습니다.
트레이더들은 2차적으로 이 가운데 환시장이 크고 유동성이 풍부한 나라를 꼽았습니다. 그 나라가 바로 한국입니다.
대만의 경우 환시장 규모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말레이시아의 경우 환트레이더들에게 악명높기로 유명한 마하티르 총리가 지금 다시 총리로 앉아있는 나라입니다. 과거 외환위기 때인 1998년 고정환율을 도입해 환트레이더들과 싸웠던 사람입니다.
결국 공략 대상으로 선택된 나라는 한국입니다.
월스트리트의 트레이더들은 대략 1150원 부근에서 숏(매도) 베팅을 많이 했습니다.
실제 로이터통신이 아시아 주요 신흥국 통화에 대한 투자자들의 외환포지션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지난 23일까지 2주일간 원화에 대한 쇼트 포지션이 확대됐습니다. 각국 통화에 대한 미국 달러 포지션을 -3 부터 3까지 지수로 추정한 결과, 원화 포지션이 1.69로 조사 대상 9개국 중 가장 높았고 2008년 10월 이후 최고를 기록한 겁니다.
달러에 대한 '롱 포지션'(매수)이 가장 클 때 '3'이고, 이 수치가 높을수록 달러에 대해 해당 통화 가치 하락에 베팅하는 추세가 강하다는 뜻입니다. 원화는 심지어 중국 위안화(1.28)보다도 더 숏 포지션이 컸습니다.
그 영향으로 환율이 1190원대까지 치솟았지만, 한국은행은 별달리 환 시장에 개입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트레이더들은 한은이 움직이지 않은 이유로 ①경제가 안좋은 상황에서 환이 오르면 수출이라도 도움을 받을 것이다 ② 트럼프 행정부가 환 개입에 대해 공격할 수 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움직일 필요가 없다라고 생각한 것으로 짐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환율이 1200원선을 육박하자, 한은은 서서히 개입 움직임을 보입니다.
월가 트레이더들도 이번에 심리적 지지선인 1200원선을 넘지는 못할 것을 보고 1190원대에서 상당수 포지션을 정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환율은 1195원을 찍고 내려와 지난 28일 1189원까지 내려왔습니다.
월가 트레이더들은 원화가 당분간 달러당 1150~1200원 사이를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거시경제 전반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에 중기적으로 1200원을 넘을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한국 경제가 다시 살아나서 환율이 안정됐으면 합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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