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깨고 원거리 소비자 불러모아
[ 안재광 기자 ] 2016년 미국에서 대형 쇼핑몰이 하나둘 문을 닫았다. “대형 쇼핑몰 시대가 끝났다”고들 했다. 그해 이마트는 스타필드하남 문을 열었다. 사람을 모을 수 있다고 했고 실제 계획대로 됐다. 코스트코 같은 창고형 할인매장 트레이더스를 열 때도 걱정이 많았다. 이마트 매출이 줄어들 것이라는 반대가 있었다. 지금 트레이더스는 16개나 영업 중이다.
이마트는 그동안 상식을 깬 전략으로 성장했다. 파괴적 사고는 DNA처럼 새겨진 듯하다. 창사 이래 가장 큰 어려움에 부딪치자 다시 상식을 깨기 시작했다. 이마트와 트레이더스가 한 공간에서 영업하고, 와인과 소고기를 한 공간에서 팔고, 패션 코너를 마트에 어울리지 않게 고급스럽게 꾸몄다.
경쟁 관계 이마트·트레이더스 한 공간에
이마트는 지난 3월 중순 ‘실험’을 했다. 이마트 월계점 바로 옆에 트레이더스 매장을 낸 것. ‘자충수’처럼 보였다. 대형마트인 이마트와 창고형 할인점 트레이더스는 경쟁 관계다. 트레이더스가 대량 묶음상품을 이마트보다 저렴하게 팔기 때문에 손님을 뺏길 게 뻔했다. “이마트 월계점 매출이 트레이더스로 인해 30% 감소할 수 있다”는 보고서도 올라왔다. 그러나 경영진은 밀어붙였다. 1분기 이익이 전년 대비 반 토막 날 게 예상되는 상황에서 하지 못할 일이 없다는 위기감이 작용했다.
물론 ‘노림수’가 있었다. 트레이더스에 오는 소비자를 이마트도 들르게 하는 전략이었다. 이마트 월계점은 ‘동네 장사’를 한다. 반경 3㎞ 이내 거주자가 주된 소비자다. 인근에 홈플러스 코스트코 등이 있어 멀리서 이마트를 방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트레이더스는 다르다. 광역 상권으로 분류하는 5~7㎞ 떨어진 곳에서도 일부러 찾아온다. 이마트는 트레이더스를 옆에 붙여 ‘원거리 소비자’를 끌어들였다.
이 전략은 성과를 내고 있다. 트레이더스가 생기기 전 이마트 월계점 방문객의 61%는 반경 3㎞ 이내에서 왔다. 트레이더스가 문을 연 지 한 달이 지나자 이 비중은 49%로 떨어졌다. 대신 멀리서 온 사람들이 늘었다. 7㎞ 이상 떨어진 곳에서 온 사람도 16%나 됐다. 이마트 전체 방문자도 트레이더스가 생긴 뒤 늘었다. 트레이더스 방문객의 약 56%가 이마트에도 간 것으로 집계됐다. 트레이더스와 이마트의 매출 합계(3월 14일~5월 16일 기준)는 기존 이마트 매출의 2.2배로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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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코너는 마트 아닌 백화점처럼
이마트 매장 가운데 패션 코너는 사실상 죽어가는 공간이었다. 옷을 사기 위해 마트에 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트 패션 매장은 저렴한 상품을 판매하는 게 일반적이다. 장 보러 왔다가 잠시 들르는 주부 소비자가 타깃이었다. 가뜩이나 어려운데 온라인몰이 빠르게 확산되자 매출이 급격히 떨어졌다. “패션 매장을 아예 빼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이마트 경영진은 정반대 결정을 했다. 패션을 대폭 강화키로 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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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이 바뀌자 매출이 늘었다. 8개 패션매장 매출은 전년 대비 6.3% 증가했다. 방문객 수는 10% 이상 늘었다. 뜻밖의 소득도 있었다. 마트를 잘 찾지 않던 젊은 층이 많아졌다. 30대 이하 매출 비중이 기존 21%에서 27%로 높아졌다.
같은 상품 아닌 연관 상품별 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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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에는 맥주 옆에는 와인이 있어야 했다. 소비자가 주류를 산 뒤 안주를 고르기 위해 멀리 돌아가면 중간에 다른 상품도 살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소비자가 아닌, ‘공급자 중심’의 진열이었다.
이마트 관계자는 “매대 위치를 조금만 바꿔도 매출 차이가 커 공급사와 바이어의 저항이 있었다. 하지만 위기를 돌파하려면 공급자 중심의 사고를 버려야 한다고 설득해 기존 공식을 깨기로 했다”고 전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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