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강화로 짓밟힐까 우려
[ 전예진/박상익 기자 ]
코오롱생명과학이 개발한 인보사의 허가가 취소되면서 제약바이오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 바이오산업이 신뢰도에 치명타를 입었고 이로 인해 바이오기업의 연구개발(R&D)과 투자가 위축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인보사 사태는 회사 측이 허위 서류를 제출하고 일부 실험 데이터를 숨기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제2의 황우석 사태’로 불리고 있다. 2005년 황우석 서울대 수의대 교수의 논문 조작 사건 이후 국내 과학계는 한동안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학계에서는 줄기세포 분야 연구 예산이 삭감됐고 치료제를 개발하던 기업들도 투자를 받기 어려워 개발을 포기하거나 허가 일정이 늦춰졌다. 인보사 사태가 황우석 사태로 비화돼선 안 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인보사 사태로 바이오의약품 규제가 강화될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업계가 우려하는 점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의약품 전주기 안전관리체계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첨단재생의료법 통과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강석희 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장은 “인보사 사태가 최첨단 치료제로 떠오르는 세포 및 유전자 치료제 분야에 걸림돌이 돼서는 안 된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바이오의약품의 품질 관리 수준을 높이고 제2, 제3의 인보사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인보사 사태 빌미로 규제 장벽 높이면 모두 망하는 길 될 것"
제약 바이오업계 전문가와 최고경영자(CEO)들은 인보사 허가 취소 사태를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10여년 전 논문조작 사건으로 바이오산업 규제를 양산하는 단초가 됐던 ‘황우석 사태’가 재발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규제 강화 등으로 국내 신약 개발의 성장동력을 약화시켜선 안 된다는 것이다.
서정선 바이오협회 회장(마크로젠 회장)은 “이번 일을 계기로 바이오기업들이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며 “재발 방지를 이유로 과도하게 규제 벽을 높이면 모두가 망하는 길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내 바이오산업이 글로벌 스탠더드로 가는 와중에 불거진 사건으로 이해해야 한다”며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변모하려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것인 만큼 무조건 규제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 대표도 “황우석 사태 때는 생명과 관련한 비윤리적 행위가 큰 문제가 된 것”이라며 “인보사는 적어도 10년 이상 임상에서 특이한 부작용이 없었고 장기 추적조사를 할 계획인 만큼 그때와 직접 비교하긴 힘들다”고 말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신약 허가 과정에서 전주기 관리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정 대표는 “식약처도 융합 부서를 꾸리는 등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현 조건에선 심사에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기업들이 신약 개발 과정에서 올바른 길을 걷고 공무원도 일관된 해석을 할 수 있도록 선제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 유전자치료제 개발 기업 관계자는 “신약 개발 후 허가 취소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두고 업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며 “정부가 바이오산업을 중점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음에도 오히려 심사가 더 길어지면 기업으로선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윤리의식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고종성 제노스코 대표는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분야에선 과학과 경영에서의 윤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미국 바이오기업들은 이런 점을 철저히 지켰기 때문에 수많은 실패 속에서도 가능성을 인정받아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예진/박상익 기자 ac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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