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베트남 전쟁을 얼마나 공정하게 기억하는가

입력 2019-05-30 18:10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비엣 타인 응우옌 지음 / 부희령 옮김 / 더봄
440쪽 / 2만2000원



[ 윤정현 기자 ]
기원전 111년부터 1000년 넘게 중국의 지배를 받아온 베트남은 이후 프랑스의 식민지로 100여 년의 세월을 보냈다. 태평양전쟁 중엔 일본 치하에 있다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엔 남북으로 쪼개졌다. 북쪽은 호찌민이 이끄는 베트남민주공화국, 남쪽은 미국의 지원을 받는 베트남공화국이었다. 미국은 1964년 8월 베트남 통킹만에서 작전 중이던 미국 구축함이 북베트남 어뢰정의 공격을 받았다며 선전포고를 했다. 이른바 ‘통킹만 사건’으로 발발한 전쟁은 1975년 4월 30일 사이공(현 호찌민) 함락으로 끝난다.

당시의 전쟁을 미국인은 ‘베트남전쟁’, 베트남 사람들은 ‘미국전쟁’이라 부른다.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전쟁을 둘러싼 집단의 기억 속에 여전히 상처로 남아 있는 흔적들을 찾아간다. 이중간첩인 주인공의 눈을 통해 베트남과 미국 사회의 이면을 들여다본 장편소설 《동조자》로 2016년 퓰리처상을 받은 비엣 타인 응우옌이 10년간 취재하고 집필한 논픽션이다. 서던캘리포니아대 영문학과 교수인 저자는 1971년 전쟁 중이던 베트남에서 태어났다. 사이공이 함락된 1975년 난민이 돼 미국으로 이주했다. 베트남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그는 자신을 “미국이 저지른 것에 실망했지만 미국의 변명을 믿고 싶어하는 베트남인” “베트남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베트남을 알고 싶어하는 미국인”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에 대해 다양한 측면에서 접근한다. 많은 미국인에게 2차 세계대전이 ‘좋은 전쟁’으로 각인돼 있는 반면 베트남에서의 전쟁은 ‘심각한 손실’을 남긴 ‘나쁜 전쟁’으로 남아 있다는 예가 쉽게 와 닿는다. 전쟁을 어떻게 기억하느냐의 문제가 국가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핵심이 되기도 한다. 저자는 “모든 전쟁은 두 번 치러진다”며 “처음엔 전쟁터에서 싸우고, 두 번째는 기억 속에서 싸운다”고 서술한다.

저자가 한국의 전쟁기념관을 찾아 더듬어본 ‘해외 파병’ 전시실의 흔적은 아프게 다가온다. 그곳엔 베트남 참전 군인들의 사진 아래 ‘베트남에 파병된 한국 군대는 공익서비스 향상과 개발 사업에 기여한 것에 큰 자부심을 가졌다. 그들은 베트남 국민들 사이에서 공정하고 친절하다는 명성을 얻었다’고 쓰여 있다. 미국과의 관계와 이후 경제 발전에 대한 설명도 덧붙였다. 하지만 저자는 “베트남인은 일반적으로 한국인을 부정적으로 기억한다”며 “한국인 병사들과 연합해 싸웠던 남베트남인들마저도 한국인에 대해 그다지 호의를 보이지 않았다”고 잘라 말한다. ‘미라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선미 학살 기념관엔 영어와 베트남어로 ‘미국의 침략자와 한국 용병들이 폭력적으로 저지른 잔인한 범죄’라는 안내가 붙어 있다.

글과 사진, 영상과 기념비 등은 전쟁을 기억으로 새기는 중요한 증언이다. 동시에 왜곡된 기억을 효과적으로 알리고 확정짓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저자는 영화로 대표되는 산업화된 기억의 매개물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언어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영어로 제작된 상품은 베트남어로 제작된 것보다 더 접근성이 좋고 미국의 기억은 베트남의 기억보다 더 세련된 스타일의 ‘작품’으로 탄생한다. 저자는 “우리가 어떻게 그 사건을 기억하는지, 누가 기억 관련 산업을 통제하고 누가 기억을 남용하는지 다시 따져봐야 한다”며 “화해와 용서에 이르는 길은 자기 자신과 타자 모두를 회상하는 윤리적 기억을 통해서만 이뤄진다”고 강조한다.

‘기념물은 기억의 교묘한 속임수다’ ‘살인은 강자의 무기이다. 반대로 죽음은 약자의 무기다’ ‘과거의 전쟁은 현재의 전쟁을 정당화한다’ 등 짧지만 곱씹어 볼 만한 문장이 많다. 책은 베트남에서 벌어진 전쟁을 일방적이고 평면적이 아니라 다양한 입장에서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전쟁의 역사는 미국과의 싸움에서 베트남을 승자로 기록한다. 하지만 10여 년의 전쟁 기간 미국의 인명 손실이 5만8000명이었던 반면 베트남과 라오스, 캄보디아에선 4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역사 속 수많은 전쟁이 얼마나 공정한 기억으로 우리에게 남아 있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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