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리스트, 웹드라마계 독보적인 콘텐츠의 힘
박태원 대표 "우리만의 세계관 구축했죠"
10, 20대 사이에서 TV드라마보다 더 '핫'한 반응을 얻고 있는 웹드라마들이 있다. 삶을 파고든 듯한 현실감 넘치는 스토리가 공감을 자아내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은 시청자들의 로망을 적절히 반영하고 있어 강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트렌드를 선도한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이 콘텐츠들은 모르면 '아싸'라는 말을 들을 정도의 주류 장르가 됐다. 뉴 제너레이션 시청층을 제대로 사로잡으며 웹드라마계에 이례적인 기록을 써 내려가고 있는 플레이리스트의 이야기다.
* 아싸 : 아웃사이더(outsider)의 줄임말로 무리에 잘 섞이지 못하고 겉도는 사람을 칭하는 신조어. 인사이더(insider)를 뜻하는 '인싸'의 반대말.
글로벌 조회 수 13억 돌파, 전 세계 채널 구독자 수 770만 명 이상. 이는 '연애 플레이리스트(이하 '연플리')', '열일곱', '한입만', '에이틴', '이런 꽃 같은 엔딩' 등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본 플레이리스트의 작품들이 켜켜이 쌓여 일궈낸 성과다. 유튜브만 봐도 구독자 수 215만, 조회 수 4억4000만 이상으로 콘텐츠의 막강한 파급력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웹드라마 명가로 자리매김한 플레이리스트의 작품은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말에 정확하게 부합한다. 작품 간 지적재산권(IP)을 엮어 세계관을 형성한다는 박태원 대표의 혜안이 있었기에 가능한 부분이다. 그는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각 드라마를 긴밀하게 연결하며 세계관을 구축했다. 작품에 공감 그 이상의 소통과 성장이 담길 수 있는 이유였다.
'연플리', '열일곱', '에이틴' 등 다수의 작품을 연이어 성공시키며 웹드라마의 신화를 쓴 플레이리스트 박태원 대표를 서울 모처에서 만났다.
▲웹드라마 제작사 최강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희는 시작한 지 오래된 제작사가 아니에요. 2017년 초부터 시작해서 이제 갓 2년을 넘겼죠. '연플리', '에이틴', '이런 꽃 같은 엔딩' 등의 작품들이 좋은 영향을 남겨서 만족하고 있지만 우리가 많은 길을 왔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대한민국을 범위로 한정하지 않고 아시아와 그 이상으로 넘어 나아가는 게 목표죠. 대한민국에서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시는 브랜드가 됐다면 이제는 아시아를 넘어 더 넓게 진출하고 싶어요.
▲아시아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나.
일본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어요. '에이틴'이라는 드라마에 자막을 붙여서 일본 채널에서 방영했는데 큰 반응을 일으켰어요. 조회 수도 많이 나왔고요. 굿즈도 판매했는데 한국만큼 많이 팔렸어요. 실제로 우리 콘텐츠를 좋아한다고 느낄 수 있었죠. 판가름하고 싶었던 게 스토리였거든요. 공감을 하느냐 못하느냐였는데 다행히 좋은 반응을 얻었어요. 그래서 올해와 내년에 나오는 작품도 일본 시장을 염두에 둔 게 많아요.
▲국내·외로 인기를 얻고 있는 비결을 분석한다면?
저희는 드라마를 기획, 개발할 때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 없느냐가 시청 여부를 좌우한다고 생각해요. 요즘처럼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에서는 공감이라는 키워드가 중요하다고 봐요. 내 이야기인 것처럼 느껴야만 주변에 추천할 수 있고, 그래야 콘텐츠가 성공한다 생각해요. '연플리' 같은 경우는 20대 캠퍼스 로맨스물이었고, '에이틴'은 10대 학원물이었죠. 해당 연령층이 꼭 봐야 하는 드라마로 포지셔닝을 해왔어요. 선택한 소재나 캐릭터 감정선이 쉽게 공감할 수 있기 때문에 빠르게 퍼져나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특정 연령층 공략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공감을 가장 큰 키워드로 잡았어요. 이걸 더 강화하기 위해 단순히 우리가 원하는 메시지를 만드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듣고 싶고, 보고 싶은 메시지를 전하는 것에 중점을 뒀어요. 사전 인터뷰도 정말 많이 진행했어요. 또 실제 트렌드 조사 등을 통해 사람들이 가장 많이 공감할 수 있는 소재와 주제를 발굴하는 데 집중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준비를 하는가.
사전에 준비하는 단계가 짧게는 3개월, 길게는 6개월에서 8개월까지도 걸려요. 캐릭터를 기획, 개발을 할 때도 요즘은 단순히 비주얼적인 부분만 래퍼런스를 찾는 게 아니라 그 외에 'TMI', 즉 캐릭터의 부가적인 정보들을 많이 나열해요. TMI나 백문 백답을 만들어서 각각의 캐릭터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묘사하려고 하죠. 이런 것들이 오롯이 작품에 녹아나고 실제 배우들이 연기할 수 있어야 몰입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작품에 실제 들어갔을 때도 배우의 헤어나 메이크업부터 시작해서 몸짓이나 성격, 제스처까지도 캐릭터가 녹아날 수 있도록 신경을 써요.
▲시행착오도 있었을 것 같다.
2018년 3~5월 시기에 내놨던 작품들이 연달아 흥행에 실패했어요. 단순히 시청자들이 보지 않았다는 것뿐만 아니라 당시에 준비가 미흡해서 시청자들의 부정적인 반응이 많았죠. 그때는 시작한 지 1년 정도 된 시기라 경험이 부족해 무리하게 진행했던 것들이 있었어요.
▲어떤 어려움이 있었고, 또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콘텐츠는 기본적으로 흥행 사업이기 때문에 어려운 부분이 많이 존재해요. 작품이 흥행하지 않고, 비즈니스가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던 2018년이었죠. 그러나 하나하나의 시도나 작품들이 단순히 실패를 했다고 끝나는 게 아니더라고요. 내부적으로 배운 게 많았어요. 작품이 끝날 때마다 다 같이 모여 리뷰를 하는데 그게 다음 작품에 반영되면서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해요. 힘들었던 시기에 교훈을 얻고, 그 교훈을 바탕으로 딛고 성장할 수 있다면 당시의 어려움 또한 가치 있는 것이라 생각해 긍정적으로 생각했어요.
▲ 과거와 현재. 달라진 입지를 실감하는가.
인력이라던가 리소스가 많이 부족했던 시기였던 2017년에는 한 해 총 4개의 작품을 했어요. 작업을 많이 하지도 못하고 준비 기간도 길지 못했죠. 충분한 조사를 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어요. 하지만 2018년, 2019년 10개씩 작품을 하면서 더 많은 시간과 인원들이 투입됐어요. 조금 더 좋은 작품들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이 됐다 생각해요. 특히 더 다양한 배우, 아티스트들과 협업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아요.
▲배우들의 면면도 참 인상적이다.
캐스팅은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하고, 시간을 많이 들이는 프로세스에요. 기존의 전통 미디어 드라마와 달리 저희가 S급, A급 배우들을 쓸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무엇보다 작품을 전달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배우들이라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한 배역을 위해 적게는 10명, 많게는 100명의 오디션을 보기도 해요. 공개 오디션을 통해 찾고자 하는 얼굴과 배역을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열어놓고 찾는 자리를 마련했죠. 그때도, 지금도 좋은 배우들을 발굴할 수 있는 정말 의미 있는 실험이 아닌가 싶어요.
▲극 중 배경으로 등장하는 서연대, 서연고 등 세계관이 이어져 있다는데…
맞아요. 둘 다 가상의 공간이지만 작품의 중요한 매개체로 설정해두면 캐릭터끼리 연결될 수 있는 부분들이 생긴다 생각해요. 시청자들은 너무 낯선 걸 보면 공감하지 못하고, 너무 익숙한 걸 보면 지루하다고 평가해요. 그 사이의 균형점이 필요하다고 봤어요. 세계관이 존재함으로써 시청자 입장에서는 서연고, 서연대에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하더라도 훨씬 친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거죠. 소비해 온 것의 연장선상인 셈이에요.
▲세계관 구축의 이유는?
심리적 장벽을 낮추고 싶었어요. 작품의 흥행과도 연결되는 것이라 생각해요. 콘텐츠는 결국 흥행산업이에요. 얼마나 빠른 시일 내에 콘텐츠에 반응하느냐인 거죠. 각 작품들이 세계관으로 연결돼 있고, 내재화된 지식이 누적되면서 새로운 작품으로 나아가거나 다른 캐릭터로 확대될 때 더 쉽고, 적극적으로 소비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또 시청자가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예측하는 게 어렵기 때문에 세계관을 도입한 것도 있어요. 세계관을 통해 플레이리스트 작품을 독립적으로 소비하는 게 아니라 연속선상으로 소비해야 흥행성이 높아지는 거죠.
▲웹드라마 외에도 OST, 연극, 웹툰 등 다양한 포맷을 선보이고 있다.
기본적으로 다양한 형태로 IP를 개발하려고 해요. 드라마라는 형태는 몰입도가 높은 포맷일 뿐이에요. '연플리'의 연극화 같은 경우도 좋은 스토리를 개발했고, 이 스토리를 실제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게 연극의 한 가지 포맷이었어요. '에이틴'의 웹툰은 시즌 사이의 공백을 채우면서 자연스럽게 세계관을 연결하는 거였죠. 이러한 형태는 앞으로도 다양하게 나올 거라고 생각해요. 웹소설의 형태일 수도 있고, 오프라인에서 이벤트를 하는 것도 한 가지의 포맷일 수 있겠네요. 앞으로도 계속 생길 거라고 봐요.
▲향후 플레이리스트가 나아갈 길은…
단순히 시청자들을 만족시키는 게 아니라 늘 세 발자국 앞에 나가서 감동을 주고, 놀라게 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플레이리스트라는 브랜드가 가져가야 할 미션이라 생각해요. 꾸준히 믿고 볼 수 있는 채널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게 단순히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체적으로 더 빨리, 많이 확산됐으면 해요. 궁극적으로는 디즈니와 같은 회사를 꿈꿔요.
▲앞으로 어떤 점을 기대해보면 좋을까?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기였던 2018년에 얻은 교훈이 있는데요. 흔히들 '웹드라마라면', '유튜브라면'이라면서 생각하는 흥행 공식이 있어요. 그 공식을 따라가니까 저희는 오히려 실패를 했어요. 그게 곧 뻔한 것이 되고, 그 뻔한 게 곧 레드오션일 수 있었던 거죠. 누구나 할 수 있는 뻔한 것을 하는 건 저희가 해야 할 건 아니라 생각해요. 어디선가 봤거나 흔히 보이는 작품을 하지 않으려고 해요. 새롭게 받아들이고 더 공감할 수 있도록 기대를 넘어서는 작품들을 설계하는데 많이 집중하고 있어요. 올해의 키워드는 '뻔한 것 하지 말자'랍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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