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게임 질병코드, 국내 도입 신중해야

입력 2019-06-03 17:48  

"기준도 모호한 '질병' 낙인찍어
해외서 더 평가받는 한국 게임
성장산업 발전 기회 막아선 안돼"

위정현 < 중앙대 교수·한국게임학회장 >



지난달 25일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장애 질병코드’를 지정한 뒤 국내에서는 보건복지부와 일부 정신과 의사들이 이의 국내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작년 10월 국정감사에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WHO에서 분류하면 바로 국내에 도입하겠다”고 밝혀 논란을 빚을 정도로 이들의 도입 의지는 강하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진단 기준의 모호성이다. WHO는 ‘다른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우선하며, 통제능력을 상실한 채 12개월 이상 게임을 지속하는 것’을 게임 장애라고 하지만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는 국내 도입을 추진하는 의사들도 마찬가지다.

게임 장애자 수에 대한 통계도 허점투성이다. 2010년 한국중독정신의학회 산하 인터넷중독분과에서 연구한 인터넷(게임)중독치료지침을 보면 2010년 인터넷(게임) 중독률은 청소년 12.4%, 성인은 5.8%다. 하지만 현재 이들은 게임중독자를 3%로 잡고 있다. 이런 고무줄 잣대를 들이댈 경우 심신 건강한 청소년이 단지 게임을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게임장애자가 되는 비극이 속출할 수 있다.

‘게임중독자 3%’라는 수치를 인정해도 문제는 심각하다. 2019년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올해 청소년 인구(9~24세)는 876만5000명이다. 이 중 3%라면 26만2950명, 즉 청소년만 해도 26만여 명의 게임장애자가 존재한다는 충격적인 이야기가 된다.

온라인게임의 대명사가 된 ‘리니지’를 봐도 마찬가지의 의문을 갖게 된다. 리니지 모바일 버전인 리니지M의 경우 한 달간 등록 유저가 1000만 명이라고 한다. 질병코드 추진론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3%가 중독자라면 30대와 40대 이용자 중 20년 동안 누적된 ‘게임 장애자’가 전국의 거리에 넘쳐나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보건복지부가 지정하는 전국 50개 중독치료센터에는 1년에 200명도 안 되는 등록자만 있고, 이조차도 인터넷과 게임 중독이 혼재돼 있다. 따라서 순수한 게임중독자만 보면 등록자는 더욱 줄어들 것이다.

혹자는 WHO의 권위에 의지하기도 한다. 우리는 WHO와 보건복지부의 공공보건에 대한 헌신과 노력에 경의를 표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과거 WHO의 실수를 모른 체 할 수는 없다. 혹시 ‘교정 강간’이란 말을 아는가. 교정 강간이란 동성애자들을 성적으로 교정한다는 미명하에 성폭행까지 자행하는 것을 말한다. 일부 정신과 의사들은 이들에게 전기고문을 자행하기도 했다.

이런 야만적인 행위를 가능케 한 것은 미국 정신의학회와 WHO가 동성애를 질병으로 분류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동성애를 질병코드에서 제외한 것은 미국 정신의학회는 1973년이 돼서야, 그리고 WHO는 지정 28년 만인 2018년에 이르러서였다. ‘성전환증과 성 주체성 장애’라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정신과 진단 항목을 삭제한 것이다. 그들은 질병코드를 삭제했지만 고문과 성폭행 피해자들에 대해 사과 한마디 한 적이 없다.

한국 게임에 대한 평가는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특히 문화 강국인 유럽의 프랑스나 영국에서 더 높다. 작년 봄 프랑스 체육부 장관과 간담회를 한 적이 있다. 주제는 e스포츠 산업으로, 프랑스 정부가 e스포츠 산업을 육성하고 싶은데 조언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e스포츠 구단, 선수, 게임 문화 등 그 어느 조건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추진하는 것은 무리”라는 한국 전문가들의 지적에 펜싱 선수 출신인 흑인 여성 장관은 이렇게 답했다. “게임과 e스포츠는 우리 청소년의 미래문화가 될 것으로 보기 때문에 프랑스 정부는 꼭 육성해야 합니다.”

문화적 자존심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프랑스가 이렇게 절실하게 한국으로부터 배우고자 하는데, 우리는 게임과 e스포츠 산업을 질병으로 낙인찍으려 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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