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 산업현장 관행 무시
'신의칙' 인정범위 더 좁혀
[ 강현우 기자 ] 기업들은 문재인 정부 들어 법원의 노동계 편향성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고 호소한다. 최근 노동 관련 주요 판결이 수십 년간 산업현장에서 작동해온 관행과 룰을 뒤집으면서 일각에선 법원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주장하는 법리를 지나치게 수용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대표적인 사례가 통상임금이다. 대법원은 지난 2월 ‘시영운수 사건’에서 “통상임금 소급 청구를 제한하는 법리인 신의성실의 원칙을 적용하는 요건인 경영상 어려움은 신중하고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법리를 제시했다. 경영계는 법원이 앞으로 신의칙 적용을 사실상 부정하겠다는 메시지로 평가했다.
그로부터 2개월여 뒤 한진중공업 사건에서도 대법원은 ‘기업 패소’ 판결을 내렸다. 1심과 2심은 한진중공업이 2010년부터 대규모 적자를 내고 결국 채권단 손에 넘어갔다는 점을 고려해 신의칙을 인정했으나 대법원은 “그런 사정이 있다 해도 근로자의 청구가 직접적으로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아시아나항공, 두산모트롤, 금호타이어 등도 2심에선 신의칙을 적용해 승소했으나 최종심에서 승소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통상임금 범위도 확대되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달 ‘갑을오토텍 사건’에선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는 요건인 ‘고정성’ 해석을 대폭 완화해 재직자 조건이 붙은 상여금도 통상임금으로 인정했다. 그동안 ‘정기상여금은 재직자에게만 지급한다’는 취업규칙·단체협약 때문에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던 근로자까지 대거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 셈이다.
통상임금은 야근 등 초과근로의 기준이 되는 임금이다. 그동안 노사는 ‘1개월 초과 주기로 지급하는 정기상여금 등은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고용노동부 지침(1988년 제정)에 근거해 임금 수준을 정해 왔다. 그러나 대법원은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정기적으로(정기성), 모든 근로자에게(일률성), 미리 확정된 임금을 일한 시간에 따라(고정성) 지급하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또 그동안의 신뢰를 보호하기 위해 ‘근로자의 소급 임금 청구가 심각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면 그 청구를 제한할 수 있다’는 신의칙 법리도 제시했다. 경영상 어려움도 감안한 판결이었다.
하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6년이 지난 후 당시 법리를 뒤집는 판결이 잇달아 나오고 있는 것이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법원이 2013년 전원합의체 결정을 바꾸려면 다시 전원합의체를 구성해야 하는데도 소부(小部)가 새로운 법리를 제시한 것은 중대한 절차적 하자가 있다”고 지적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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