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태형 기자 ] 메리 노리스는 미국 교양지 ‘뉴요커’에서 40년 넘게 교열자로 일하고 있다. 사내 직함은 원고를 인쇄 직전까지 책임지는 사람을 뜻하는 ‘오케이어(ok’er)’다. 마침표, 쉼표 하나 그냥 넘기지 않는 깐깐이라서 ‘콤마퀸(comma queen)’이란 별칭이 붙었다. 예순넷의 나이에 첫 책 《뉴욕은 교열 중》을 출간해 이젠 작가로도 불린다.
《그리스는 교열 중》은 ‘작가 노리스’의 두 번째 책이다. 전작처럼 언어와 삶에 대한 치열한 탐구와 열정이 담긴 지적인 산문이다. 대상이 영어에서 그리스어로 바뀌었다. 저자는 학습과 여행 등을 통해 체득한 그리스 언어와 신화, 고전을 자신의 삶과 유기적으로 엮어 흥미진진하게 풀어놓는다.
노리스는 어려서부터 스스로를 지혜의 신 아테나에 빙의했다. 30대 초반 그리스어에 빠진 그는 재직 중에 뉴욕대와 컬럼비아대에서 수업을 받으며 열정적으로 ‘죽은 언어(고대 그리스어)’를 익힌다. 대학 연극반의 비극 ‘엘렉트라’ 고대어 공연에도 참가한다. 극 중 엘렉트라는 아버지(아가멤논)를 무참히 살해한 어머니(클리타임네스트라)를 남동생(오레스테스)과 함께 죽인다. 아버지의 복수를 이뤘지만 엘렉트라의 괴로움은 도리어 악화됐다. 이번엔 엘렉트라에 빙의한 저자는 이렇게 얘기한다. “내 눈 속에 뭔가 들어가 나를 미치게 할 때 참고 살려고 노력하지 않고, 기어이 그것을 도려낸 후에, 눈 속에 뭔가 들어 있는 상태가 눈알이 없는 상태보다 백번 낫다는 것을 깨닫는 이치와 같았다.”
저자의 그리스 여행기는 오디세우스의 모험담을 방불케 한다. 신화와 비극의 주인공들처럼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결핍을 채우고 성장해 간다. 호기심과 모험심에서 비롯된 다채로운 이야기는 감정의 극단을 오가면서도 절제를 잃지 않고 균형을 찾아간다.
유쾌하고 진솔한 자서전이자 그리스어와 영어, 그리스 고전의 관계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는 인문서로도 읽힌다. 그리스 문화가 서양 세계에 얼마나 깊숙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언어를 왜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준다. (김영준 옮김, 마음산책, 272쪽, 1만5500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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