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브 에거스 지음 / 강동혁 옮김
문학동네 / 432쪽 / 1만5000원
[ 서화동 기자 ]
![](https://img.hankyung.com/photo/201906/2019060635151_AA.19824473.1.jpg)
![](http://img.hankyung.com/photo/201906/2019060635151_AA.19823928.1.jpg)
“길 건너편에 예멘 사람이 커다란 잔으로 커피를 마시는 동상이 있어. 무슨 의미가 있는 게 틀림없어. 어쩌면 그게 네 길일지도 몰라.”
여자친구 미리엄의 이 한마디가 그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거기서 40m쯤 떨어진 곳에서 일하면서도 한 번도 본 적 없던 조각상이었다. 높이가 6m나 됐다. 토브(아랍 국가 남성들이 입는 발목까지 오는 긴 옷)를 입은 채 거대한 잔으로 커피를 마시면서 성큼 걸음을 내딛는 모습이었다. 조각상의 정체가 궁금해진 목타르는 길 건너편의 그 건물로 들어가 커피의 역사에 눈을 뜨게 된다. 그 건물을 지은 사람은 오스틴 힐스와 R W 힐스 형제로, 1800년대 후반에 아라비안 커피 앤드 스파이스밀스라는 커피 수입회사를 설립해 전 세계의 커피를 미국 서부 전역에 유통했다. 특히 R W 힐스가 발명한 진공포장 기술은 커피산업에 대변혁을 일으켰고, 커피 대중화의 산파 역할을 했다.
그럼 그 조각상은 누구인가. 커피에는 로부스타와 아라비카의 두 종류가 있다. 그중 맛이 훨씬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아라비카는 원산지가 아라비아여서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로마인들이 ‘아라비아 펠릭스’, 즉 ‘행복한 아라비아’라고 불렀던 곳이 바로 예멘의 항구도시 모카였다. 현재 커피라고 인식하는 것과 비슷한 형태로 커피콩을 처음 우려낸 사람은 모카에 살던 수피교 성직자 알리 이븐 오마르 알샤딜라였다. 카화라고 불린 이 음료를 수피교도들이 북아프리카와 서아시아 구석구석을 여행하면서 가져갔고, 튀르크족이 카화를 카흐베로 바꾼 것이 커피가 됐다는 설명이다.
알샤딜라는 ‘모카의 수도사’로 알려지게 됐고, 모카는 예멘에서 재배된 모든 커피가 먼 곳으로 팔려나갈 때 거쳐야 하는 출발점이 됐다. 모카항을 통해 수출된 커피를 맛본 유럽 열강들은 앞다퉈 커피콩을 훔쳐다 그들의 식민지에 심었고, 커피는 전 세계로 퍼졌다.
그러나 이런 예멘의 커피 역사를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1800년대 중반 1년에 7만5000t의 커피를 생산했던 예멘의 커피 농사는 망가졌다. 연간 생산량이 1만1000t이었지만 명품 품질을 갖춘 것은 4%에 불과했다. 커피 종주국의 명성은 잃은 지 오래였다. 대신 예멘은 급성장하는 이슬람 무장테러단체 알카에다와 이슬람국가(IS)의 세포조직, 이들을 겨냥한 미국의 드론 공격 등으로만 알려진 나라가 됐다.
목타르는 예멘의 명품 커피 부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는 대량생산과 대량유통의 이면에서 커피 생산자들이 제값을 받지 못하고 소비자는 획일화된 커피맛에 길들여진 현실을 바꾸기로 했다. 커피의 역사, 생태, 가공 및 유통과정, 커피의 품질 구분 등을 철저히 공부한 뒤 예멘의 커피 농가들을 일일이 답사하며 명품 커피를 찾아나섰다. 중간 유통이 없으므로 커피 농가에는 훨씬 많은 가격을 쳐줄 수 있었다.
하지만 예멘의 내전 상황이 발목을 잡았다. 농가를 찾아다니는 것부터 수확한 커피를 사나의 창고로 옮겼다가 컨테이너에 담아 배에 싣기까지의 과정은 한 편의 전쟁 영화를 보는 듯하다. 이동하는 경로마다 수많은 검문, 검색이 따랐고 신변의 위협을 느껴야 했다. 차량의 운전기사, 안내자와 함께 구금되기도 했다.
천신만고 끝에 블루보틀에서 첫선을 보인 모카 커피에 대한 반응은 엄청났다. 2017년 2월 ‘커피 리뷰’는 모카항 커피회사의 하이마 농장산 커피에 97점을 줬다. 21년 ‘커피 리뷰’ 사상 최고점이었다. 예멘의 커피 농장들은 앞다퉈 모카항 커피회사로 자신들의 커피콩을 가져왔고 옛 명성을 되찾기 시작했다. 목타르도, 예멘의 커피 농가도, 커피 마니아들도 다 좋아진 것이다. 최고의 커피 맛이 어떤지 궁금해진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