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보완 미룬 채 내달 적용 확대…'2차 쇼크' 예고
주 52시간 근로제가 도입된 지 내달로 만 1년을 맞지만 산업현장 곳곳에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저녁이 있는 삶’이란 당초 기대와 달리, 근로자와 기업 모두 불만을 터뜨린다. 일을 더 할 수 없게 된 근로자는 소득이 줄어 아우성이고, 기업은 기업대로 생산 차질과 납기 지연 등 경영의 어려움이 쌓여간다. 줄어든 임금 보전을 놓고 노사 갈등을 빚는 곳도 적지 않다.
급작스런 근로시간 단축은 많은 것을 바꿔놨다. 기업 경쟁력의 핵심인 R&D(연구개발)단지조차 오후 5시30분이면 ‘칼퇴근’이다. “해외 유수 기업들보다 기술력이 뒤처지는데 연구도 덜하면서 어떻게 경쟁에서 이길지 의문”이라는 탄식이 해당 기업들에서부터 터져나온다. 근로시간 초과를 우려해 직원 교육까지 대폭 축소됐다. ‘시간이 돈’인 건설업계는 공기 지연으로 비상이다. 건설산업연구원이 대형 건설사가 맡은 109개 공사를 전수조사한 결과 44%가 공기를 맞출 수 없는 처지다. 게임업계는 신작 출시와 대규모 업그레이드가 늦어져 중국 등 해외 경쟁사들에 밀리는 형국이다.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도 중요하고, 과로를 줄이고 일하는 방식을 바꿀 필요도 있다. 그러나 지난 1년간 드러난 현실은 일하는 시간만 줄었을 뿐, 생산성도 고용도 소득도 나아진 게 없다. 소득이 월 수십만원씩 줄어든 근로자가 수두룩하다. 한국노동연구원 조사로도 300인 이상 사업장 상용직의 초과급여가 월 평균 4만3820원 감소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맞물려 고용사정은 20년래 최악이다. 금융권에선 추가 고용 대신 인공지능(AI) 로봇으로 대체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그런데도 주 52시간제의 부작용을 보완할 탄력근로·선택근로제 도입은 국회에서 꽉 막혀 있다. 내달부터 버스운송, 방송, 전기통신 등 21개 업종의 특례가 해제돼 1000여 개 사업장에 주 52시간제가 시행되면 ‘2차 쇼크’가 불 보듯 뻔하다. 내년에는 50~300인 미만 중소기업까지 확대돼 그 파장을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오죽하면 산업계에선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쇼크’였다면, 주 52시간제는 만성 피로와 무기력증을 유발하는 ‘당뇨병’에 비유할까 싶다.
이런 판국이니 나라 밖에서 한국을 보는 시각이 예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해외 투자은행(IB)들은 분초를 다투는 글로벌 자본시장을 담당하는 이들까지 주 52시간제를 적용한 데 대해 “한국이 미쳤다”며 이참에 좋은 인력을 빼가기 위한 ‘인재 사냥터’로 여긴다고 한다. 국내 기업의 해외법인들에선 “글로벌 현장은 전쟁터인데, 한국만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하소연까지 들려온다.
그동안 세계가 인정한 한국의 강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납기 경쟁력, 문제 발생 시 신속한 대처능력,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그렇게 ‘한강의 기적’을 이뤘고, 소득 3만달러 시대를 열었다. 이제는 무슨 강점을 내세울 수 있겠는가. 흐르는 물에 서면 발 밑의 모래가 빠지듯, 서서히 꺼져가는 미래 경쟁력을 어떻게 살릴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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