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청약, 신도시 미달 vs 도심 고공행진
신도시라고 '무조건 청약'하지 않아
"기본적 인프라 갖춰진 제대로 된 개발 이뤄져야"
"허허벌판인 신도시에 왜 들어가려고 하냐"고 물었을 때 돌아오는 속담같은 말이 있다. 바로 "장화 신고 들어가도 구두 신고 나온다"는 말이다. 신도시는 초창기에 길은 물론이고 학교, 각종 인프라들이 거의 없다. 분양가도 이를 반영해 낮게 책정된다. 그러나 인프라가 하나하나 갖춰지고 인구가 늘면서 분양가도 올라간다. 신도시는 초기에 장화를 신고 다닐만큼 열악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시세차익에 최신 인프라를 누릴 수 있는 도시가 된다.
이런 말이 나오기 시작한 건 1기 신도시부터였다. "서울에서 굳이 왜 이사를 가냐"라는 말이 오갔지만, 사실 서울 구도심의 형편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1980년대말~1990년대 초였으니 서울이라고 하더라도 일부 아파트 밀집지를 제외하면 주거환경을 열악했다. 오래된 교실에서 콩나물 시루 같이 앉아 공부하는 아이들이 여전히 있었고 담장을 넘나드는 범죄나 화재, 수해 등이 여전하던 때였다. 그런데 서울과 멀지 않은 곳에 새 아파트로 이뤄진 깨끗한 도시가 있고 여기에 집값까지 치솟고 있으니…. 신도시는 그야말로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2019년 신도시는 기피대상이 되는 모양새다. 기피의 이유는 불신에서 비롯됐다. 정부는 3기 신도시, 2기 신도시의 교통망 확충 등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지만 실제 사람들의 발길은 신도시와 멀어지고 있다. 이른바 '신도시 불신론'이 확산되고 있다. 신도시에 미래가치를 기대했던 수요자들은 '장화 신고 평생 살아야 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신도시를 외면하고 있다. 새 집에 살고 싶으면 기존에 인프라가 있는 구도심에서 개발되는 사업으로 몰리고 있다.
최근 청약결과를 봐도 이러한 현상은 뚜렷하게 나타난다. 수도권의 대표적인 도시인 인천에서는 이러한 분위기가 뚜렷하게 감지된다. 인천은 2기 신도시, 3기 신도시 개발이 진행되고 있고 3개의 국제도시와 구도심 개발까지 한꺼번에 이뤄지고 있다. 다시말해 인천의 청약통장 움직임을 보면, 수요자들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다.
2기 신도시인 검단신도시는 3기 신도시 발표 이후 외면에 가까운 수준으로 청약경쟁률이 떨어졌다. 한신공영의 검단신도시 한신더휴(0.94대 1)를 비롯해 대광건영의 검단불로 대광로제비앙(0.06대 1), 대광건설의 대방노블랜드(0.06대 1), 동양건설산업의 검단파라곤 1차(0.30대 1)을 기록했다.
반면 인천의 구도심에서 나란히 분양했던 단지는 인기를 끌었다. ㈜신영이 서구 가정동 루원시티 주상복합 3블록에 조성하는 ‘루원 지웰시티 푸르지오’와 코오롱글로벌이 부평구 부개동 부개3구역주택재개발을 통해 선보인 ‘부개역 코오롱하늘채’가 그랬다. 2개 단지는 당첨자 발표일이 같아서 동시청약이 불가능했지만, 청약자들은 고른 선택을 했다.
부개역 코오롱하늘채는 219가구(특별공급 제외) 모집에 총 1180명이 몰리며 평균 5.4대 1의 청약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 단지는 비조정지역으로 전매제한이 6개월로 짧은 편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투자수요가 있을 수 있으니 전매제한이 3년인 신도시와 비교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렇다면 루원 지웰시티 푸르지오는 어떤가? 이 단지는 도시개발사업으로 청약 1순위의 우선권은 인천거주자에게 있고, 전매제한도 3년이다. 심지어 지난해 분양했던 주변 단지 보다도 분양가가 높게 책정됐다. 이러한 까다로운 조건을 감안하면 1순위 청약접수 결과는 입이 벌어질 정도다. 특별공급을 제외한 468가구 모집에 당해와 기타 포함 총 5016명이 청약해 평균 10.72대 1의 청약 경쟁률을 나타냈다. 6개의 주택형이 모두 1순위 당해지역에서 마감됐다.
최고 경쟁률은 전용면적 84㎡F 주택형에서 나왔다. 16.59대 1로 68가구 모집에 1128명이 몰렸다. 이 주택형은 정남향, 판상형에 가정공원이 조망되는 타입이다. 모델하우스에 전시도 되어 있지 않은 타입이었지만, 가장 많은 청약자들이 몰렸다. 84㎡로만 이뤄진 이 단지의 분양가는 평균 4억5000만~4억6000만원 정도다.
신도시처럼 전매제한 기간도 길었지만, 분양가는 신도시 보다 높았다. 하지만 청약자들의 마음을 움직인 동력은 '확신'이었다. 지난달 31일 모델하우스를 찾은 방문객들도 이러한 반응이었다. 청라국제도시에 살고 있는 A씨는 "청라에 전세로 살면서 지역에 대한 주거 만족도가 높지만, 분양이 거의 없었다"며 "루원시티라도 청약을 하려는데 당첨되면 거주할 예정이다. 전매제한 기간이 길건 짧건 관계없다"고 잘라 말했다. A씨는 "솔직히 인천에서 아파트로 돈 번 사람이 몇이나 되겠으며, 벌더라도 서울이나 다른 지역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라며 "살고 싶은 집에 청약하는 게 당연한 지역이다"라고 덧붙였다.
루원시티는 가정오거리 주변을 개발하는 사업이다. 인천지하철 2호선이 이미 지나고 있고, 서울지하철 7호선 개통도 예정됐다. 학교들도 이미 있다. 단지 내 상가에는 영화관 CGV 입점도 확정됐다. 신도시에서 흔히 겪는 학교, 교통, 상가공실 등의 문제가 거의 없다는 얘기다. 도시 개발이 거의 완료된 청라국제도시, 가정지구와도 가깝다. 루원시티에서 부족한 인프라는 이들 지역으로 이동해 누리면 된다.
루원시티가 마냥 좋다는 건 아니다. 루원시티 또한 보상문제와 개발문제 등이 맞물리면서 분양 아파트가 나오기까지 10여년이 걸렸다. 원래 계획대로 10년 전에 분양했더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런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시간동안 주변 도시들이 갖춰지고 인프라가 깔렸고, 뒤늦게 개발된 루원시티는 인프라 수혜를 고스란히 가져가게 됐다.
시대가 달라졌다. 미래의 구두를 꿈꾸며 갖은 고생에도 참는 시대가 아니다. 선택지는 많아졌고 정보는 넘쳐난다. 수요자들은 신도시의 장화를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신도시던 구도심이건 명품구두가 될 수 있는 구두를 선택을 하고 있다. 공급자들의 답도 정해졌다. 처음부터 비싼 명품을 내놓지 않을 바에는 누가 신어도 불편하지 않은 멀쩡한 구두를 내놔야 한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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