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 이하 월드컵 4강行
VAR에 울고 웃은 난타전
이강인, 1골 2도움 맹활약
[ 조희찬 기자 ] “고조선 이후 가장 극적인, 아니 만화 같았던 경기!”
종료 1분 전 ‘버저비터’ 동점 후 연장 전반 역전, 연장 종료 30초 전 동점 골 허용, 승부차기 첫 두 명 실축 후 재역전….
이런 드라마가 또 있을까. 정규시간 90분도 모자라 연장 30분 내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더니 승부차기에서도 드라마 같은 대역전극이 펼쳐졌다. “소름끼친다. 내 생애 최고의 경기”라는 축구팬들의 찬사가 쏟아졌다. 36년 만에 ‘4강 신화’를 재현한 주인공은 ‘한국 축구의 미래’ 20세 이하(U-20) 대표팀이다.
한국은 9일 새벽(한국시간) 폴란드 비엘스코비아와 경기장에서 열린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8강에서 세네갈과 연장 접전 끝에 3-3 무승부를 기록했고 이어진 승부차기에서 3-2로 승리했다. 18세 ‘막내형’ 이강인(발렌시아)은 1골 2도움을 기록, U-20 월드컵의 전신인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4강에 오른 이후 무려 36년 만에 한국의 준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반전, 또 반전 “이보다 극적일 순 없다”
출발은 불안했다. 전반 37분 코너킥 상황에서 흘러나온 공을 카뱅 디아뉴가 왼발로 강하게 때려 한국 골망을 흔들었다. 이는 반전 드라마의 예고편에 불과했다.
후반 공격 주도권을 틀어쥔 한국은 17분 행운의 페널티킥을 얻었다. 이지솔(대전)이 상대 수비에 밀려 넘어졌고, 주심이 비디오판독(VAR)을 거쳐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이강인이 왼발 인사이드 슛으로 동점을 만들었다.
한국은 후반 31분 페널티킥 추가골을 허용했다. 이번에도 VAR의 ‘매의 눈’이 희비를 갈랐다. 처음엔 세네갈 이브라히마 니아네의 슛을 이광연(강원FC)이 슈퍼세이브로 막아냈다. 그러나 VAR 판독 결과 니아네의 킥 직전 이광연이 미리 몸을 날리는 장면이 포착됐다. 올해 대회에는 골키퍼가 페널티킥 직전 골라인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룰을 엄격히 적용했다. 다시 찬 니아네의 킥은 한국의 골문을 갈랐다.
한국은 추가시간 9분을 남겨놓고 1-2로 패색이 짙었다. 하지만 1분을 남겨놓은 8분께 첫 번째 반전 드라마가 펼쳐졌다. 이강인이 왼발로 강하고 낮게 올린 크로스를 이지솔이 달려나와 헤딩으로 방향을 바꿨다. 공은 세네갈 골문 오른쪽을 비집고 들어갔다. 극적인 연장행.
드라마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연장 전반 6분. 수비수 3명을 꿰뚫은 날카로운 ‘택배 패스’가 이강인의 발끝에서 터져나왔다. 이 패스는 조영욱의 역전골로 연결됐다. 3-2 승리로 굳어질 듯했던 승부는 그러나 종료 30초 전 터진 세네갈의 동점골로 원점이 됐다. 팬들은 환희와 한숨 사이를 오갔다.
전·후반 90분 동안 다섯 차례나 나온 VAR 판정은 승부차기 드라마까지 연출했다. 한국은 1, 2번 키커 김정민(리퍼링)과 조영욱이 연달아 실축하며 고개를 숙이는 듯했다. 하지만 3번 키커 엄원상(광주)과 4번 최준(연세대)이 연속으로 성공하자 이번엔 세네갈 키커들의 실축과 한국 수문장 이광연의 그림같은 선방이 이어졌다. 승부는 순식간에 2-2로 대등해졌다.
마지막 키커인 오세훈(아산)에서 ‘폴란드 대첩’의 클라이맥스가 나왔다. 오른쪽 골문으로 강하게 찬 공이 세네갈 골키퍼에게 막힌 것이다. 하지만 VAR 판독이 선언됐다. 오세훈의 킥 직전에 골라인을 먼너 뛰어나온 골키퍼의 모습이 잡혔기 때문. 천금같은 킥 기회가 한 번 더 주어졌다. 오세훈은 이번엔 골문 가운데로 대담하게 차 넣었다. 이 대담함에 주눅이 들었을까. 마지막 세네갈 키커의 공은 힘없이 공중으로 향했다. 36년 만의 4강 신화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제갈용’의 뒷심축구+‘막내형’의 리더십
이날 승리는 정정용 감독의 ‘뒷심 축구’로 가능했다는 평가다. 전반엔 상대의 강한 공격을 막아내고 후반에 모든 것을 쏟아내는, ‘선수비 후역습’ 전략이다. 총 7골을 기록한 한국은 후반에만 6골을 몰아쳤다.
한국은 우승 후보로 꼽혔던 포르투갈, 아르헨티나, 아프리카 복병 남아프리카공화국과 같은 조에 묶이고도 생존했다.
막내형 이강인의 ‘원맨쇼’도 힘이 됐다. 그는 후반 14분 페널티킥 상황에서 중압감을 이겨내고 기어코 동점골을 넣었다. 이강인은 “원래 페널티킥을 조영욱 형이 담당했는데 제가 오늘 차고 싶다고 형에게 얘기했다”며 “형이 양보해줘 고맙다”고 공을 돌렸다.
이광연의 승부차기 ‘선방쇼’ 뒤에도 막내형의 리더십이 숨어 있었다. 이광연은 승부차기에서 세네갈의 네 번째 키커 디아 은디아예의 슛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막아 분위기를 한국 쪽으로 가져오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광연은 “(승부차기에 들어가기 직전) (이)강인이가 ‘형은 할 수 있다’고 말해줬다. 자신감이 생겼고 운좋게 걸렸다”며 이강인을 치켜세웠다.
한국은 12일 오전 3시30분 루블린에서 열리는 에콰도르와의 4강전에서 대회 사상 첫 결승 진출에 도전한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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