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스타트업 하기 좋은 중국'이라는 환상

입력 2019-06-10 17:42  

미·중 무역전쟁이 스타트업 규제 몰고와
일순간에 활력 상실…반면교사 삼아야

노경목 中 선전 특파원



[ 노경목 기자 ] 애초에 양립 불가능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민간 자율을 전제로 하는 스타트업과 중국의 권위주의 통치체제 말이다.

중국 스타트업 생태계가 위기에 처했다는 보도가 지난해 말부터 이어지고 있다. 공유 자전거의 대명사인 오포 등 많은 스타트업이 도산하거나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 미국 우버와 함께 공유 자동차의 대명사로 불리던 디디추싱은 일반 택시 사업자와 다를 것 없는 회사로 전락하고 있다. 갑자기 강화된 운행 자격 요건을 기존 기사의 2%만 충족하게 되면서다. 선전에서는 2014년 리커창 총리가 방문해 창업 기지로 추켜세웠던 3W 카페가 지난해 문을 닫았다. 글로벌 회계업체 KPMG에 따르면 중국 내 벤처캐피털 투자는 지난해 4분기 101억달러에서 올 1분기 58억달러로 절반 가까이 급락했다.

중국 스타트업 산업 전반의 급격한 조로(早老)에는 규제환경 변화가 있다. 한때는 빠른 성장 비결로 얘기되던 중국 정부 정책의 풍향이 바뀌고 있어서다. 한국의 타다와 택시업계 사이의 논란에서 보듯 스타트업의 혁신성은 기존 산업 참여자들과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다.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디디추싱이 서비스에서 기존 택시를 배제하고 일반 자동차를 투입한 2014년, 택시 기사들은 크게 반발하며 파업까지 불사했다. 2016년부터 중국 주요 도시의 거리를 점령하기 시작한 공유 자전거 역시 미관을 해치고 보행자 통행에 불편을 준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하지만 공산당이 입법, 사법, 행정 위에 군림하는 중국에서 갈등에 대한 대화나 조율은 원천적으로 차단됐다. 젊은 창업자들이 스타트업을 통해 부를 거머쥐는 모습은 시진핑 정부의 핵심 가치인 ‘중국몽’을 실현하는 것으로 선전됐다. 오랫동안 중국 드라마 소재였던 항일열사가 사라지고 빈 자리를 창업영웅들이 채우기 시작했다. 반발하는 목소리는 ‘대중창업, 만인혁신’이라는 중국 정부의 스타트업 육성 슬로건에 묻혔다. 인위적으로 조성된 사회적 갈등의 ‘진공’ 속에서 중국 스타트업의 빠른 성장도 가능했다.

미·중 무역전쟁 등 대내외 경제 조건이 변하면서 정부 정책 방향이 바뀌자 스타트업의 사업 환경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자전거에 광고를 달지 못하고, 방치된 자전거는 당국이 임의로 수거하는 시책이 도입되자 공유 자전거 업계의 수익성이 한순간에 내려앉았다. 새 공유 자동차 규제책은 디디추싱이 2012년 창업했을 때와 완전히 다른 환경을 만들었다. 스타트업 업계 일각에서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 정부의 혁신 의지가 한국보다 앞섰다”며 시원해하던 중국 정부 주도 혁신의 현실이다.

중국은 스타트업 정책에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대상이다.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는 한국에서는 애초에 가능하지 않은 모델이었다. 자유시장경제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혁신의 방향과 상충되는 이들을 국가가 나서서 제압해주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진정한 혁신은 정부가 아니라 민간에서 이뤄진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스타트업 창업자와 소비자들의 목소리가 기존 사업자의 그것만큼 반영되고, 이해관계자들을 조율해 새로운 제도를 주조할 수 있는 한국만의 혁신 플랫폼이다. 이를 창조하는 것은 힘들고 지루한 과정이 되겠지만 진정한 스타트업 혁신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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