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무역전쟁 격화에 외화예금도 '대이동'
위안화예금 20% 급감…달러는 두달새 1.4兆↑
[ 정소람/정지은/선한결 기자 ] 미·중 무역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대형 은행의 위안화예금이 올 들어 2000억원 이상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달러화예금은 최근 두 달간 1조4000억원가량 급증했다. 양국 간 무역분쟁이 ‘환율 전쟁’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달러 강세·위안화 약세’에 베팅하는 투자자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10일 은행권에 따르면 대형 은행 다섯 곳(신한 국민 우리 KEB하나 농협)의 지난 5월 말 위안화예금(정기·보통예금 합계) 잔액은 51억7683만위안(약 8800억원)으로 집계됐다. 작년 11월 64억6857만위안(약 1조1000억원)에서 20% 정도 감소했다. 6개월 만에 2000억원 이상 빠져나갔다. 달러화예금 잔액은 3월 347억1897만달러(약 41조1500억원)에서 지난달 말 358억9041만달러(약 42조5400억원)로 불어났다. 두 달 만에 약 1조4000억원 증가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위안화예금 금리가 더 높은데도 달러화예금에 수요가 몰리는 것은 금융소비자들이 강(强)달러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시중은행의 위안화예금 금리는 최고 연 2%대 중반으로 달러화예금 금리(연 1%대 후반)보다 0.5%포인트 이상 높다.
미·중 무역분쟁으로 촉발된 통화 가치의 변동성이 ‘외화 대이동’을 부추기고 있다는 게 금융권 분석이다. 위안화 환율은 작년 12월 미·중 정상회담 이후 완만한 내림세를 보이다 최근 무역 갈등이 심해지면서 단기 급등, 달러당 7위안대에 육박했다. 위안화 가치가 그만큼 떨어졌다는 뜻이다. 위안화 환율이 달러당 7위안을 넘으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0여 년 만이다.
달러화와 위안화예금의 행보가 엇갈리고 있다. 올 들어 불거진 미·중 무역갈등의 영향이 크다.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불안은 대표적 안전자산인 달러화 수요를 늘렸다.
반면 양국의 갈등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전망은 위안화를 던지게 한 요인이다. 미·중 무역분쟁이 환율로 옮겨붙으면 이 같은 흐름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은행권도 방향을 잡았다. 달러화예금 고객 잡기에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올 하반기가 외화예금의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약(弱)위안 흐름에 위안화예금 이탈
국내 대형 은행 5곳(신한·국민·우리·KEB하나·농협)의 위안화예금 잔액은 지난해 11월 최대를 기록했다. 당시 원·위안화 환율은 161원대까지 떨어졌다. 위안화예금 잔액은 64억5857만위안으로 불어났다. 위안화 가치가 바닥을 찍었다고 생각한 투자자들이 위안화 강세에 ‘베팅’하면서 위안화예금이 급증한 것이다. 연말 들어 분위기가 바뀌었다. 미·중 정상회담이 이뤄진 이후 위안화 가치는 회복세를 보였다. 오래가지는 않았다. 양국 갈등이 심해지면서 위안화 가치는 올 3월 말 달러당 6.68위안에서 최근엔 6.9위안 수준으로 다시 하락했다. 위안화예금 규모는 20% 이상(약 2000억원) 줄어들었다. 반면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달러화예금은 올 3월부터 두 달 사이 1조4000억원 늘었다. 외환시장 관계자는 “달러 가치 의존도가 높아지는 동시에 위안화 가치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중 무역분쟁이 국내 기업의 중국 수출에 악영향을 미친 것도 한 가지 원인으로 풀이된다. 수출을 통해 위안화로 들어오는 외화 규모가 줄면서 기업이 은행에 위안화로 예금하는 금액도 감소했다는 얘기다. 중국 관세청 자료에 따르면 올 들어 5월까지 한국의 대중(對中)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7.7% 감소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글로벌 경기 변동성이 커지면서 불안정한 위안화보다 전통적 안전자산인 달러화를 선호하는 투자자가 증가했다”며 “미국과 중국이 무역뿐 아니라 환율 부문에서도 부딪치고 있어 당분간 외화예금 추이도 여기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부에서는 위안화 가치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여 년 만에 달러당 7위안대로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중국 위안화 환율이 향후 3개월 이내에 달러당 7위안을 돌파(7.05위안)할 것으로 예상했다.
일각에선 ‘꼭지 잡을라’ 우려도
은행권도 주거래 고객을 잡기 위해 달러화예금 유치에 공격적으로 뛰어들면서 이런 흐름을 부추기고 있다. 외화예금은 일반 원화예금보다 한 번 계좌를 마련한 곳에서 지속적으로 거래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단골 고객’을 잡기 위한 ‘미끼’로 외화예금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SC제일은행은 오는 28일까지 수시입출금 외화예금인 ‘초이스외화보통예금’에 가입하면 3개월간 연 2.2%의 특별금리를 주기로 했다. KEB하나은행은 수시입출금 달러예금인 ‘수퍼플러스’의 신규 가입자를 대상으로 하루만 예치해도 연 1.8%의 금리를 제공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달러화예금을 찾는 금융소비자들이 ‘상투’를 잡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놓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예금 고객은 금리와 동시에 환차익을 얻을 수 있다. 환율 상승으로 인한 이익에는 세금도 붙지 않는다. 반대로 환율이 떨어지면 이에 따른 손실을 입게 된다. 한 시중은행의 WM(자산관리) 담당 부장은 “원·달러 환율이 최근 단기 급등했지만 하반기에는 안정세로 돌아설 것으로 보고 있다”며 “달러가 안전자산이어서 가치가 급락할 일은 드물겠지만 미·중 무역분쟁에 따른 환율 흐름을 신중히 보고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소람/정지은/선한결 기자 r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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