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홍콩 시위에서 맞닥뜨린 中의 '불편한 진실'

입력 2019-06-12 00:20  

홍콩 시위, 중국체제 개혁에 불붙이나

사회주의 체제 강요할수록 법치·독립 요구 되레 커져
자유주의에서 자란 홍콩인…중국인 아니라는 인식 강해
강력 진압은 中 불신 높여…유화책 쓰면 정권 불안 초래

오춘호 선임기자·공학박사




[ 오춘호 기자 ] 홍콩에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홍콩 정부가 추진하려는 범죄인 인도법을 둘러싼 홍콩 시민들의 강한 반발이다. 문제의 법이 도입되면 인권이 제대로 보호되지 않고 법치가 이뤄지지 못하는 중국에 정부가 낙인찍은 범죄인을 무조건 인도해야 한다. 자유와 법치에 익숙한 홍콩 시민들이 거리로 나선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다. 미·중 통상 분쟁의 와중에 발생한 사건이다. 미국과 중국 모두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일부에선 화웨이보다 더 큰 이슈라고 평가한다. 특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겐 엄청난 시련이다. 그에게 ‘제3의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불편한 진실’을 처리해야 할 순간이 시 주석에게 다가오고 있다.

2017년 7월 시 주석은 이례적으로 홍콩을 방문했다. 홍콩을 영국에서 반환받은 지 20년을 맞아 축하하는 행사였다. 그는 그 자리에서 “홍콩이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다”며 “민족이 겪은 100년 동안의 굴욕을 씻고 조국의 완전한 통일을 실현하는 중대한 첫걸음을 이뤘다”고 했다. 홍콩은 잃어버린 중국의 땅이었고 홍콩 시민들은 중국을 고국으로 생각한다는 강력한 믿음이 그의 말에서 묻어나왔다.

하지만 홍콩 주민들은 이 연설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중국 정부가 영국에 약속한 일국양제(一國兩制), 항인치항(港人治港:홍콩인에 의한 홍콩 통치), 고도자치(高度自治)의 3대 원칙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만 흘러나왔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홍콩 주민들의 중국 본토에 대한 의식은 더욱 악화됐다. 홍콩 주민 사이에서 자신을 중국인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홍콩대가 매년 벌이는 홍콩 시민 의식조사에 따르면 자신을 중국인이라고 생각하는 시민은 지난해 불과 15%에 그쳤다. 홍콩인이라고 생각하는 주민은 40%나 된다.


중국인 인식 불과 15%

베이징올림픽이 개최된 2008년엔 중국인이라는 대답과 홍콩인이라는 응답률이 근접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뒤 중국인이라는 인식은 차츰 옅어져 갔다. 젊은 층은 더하다. 자신이 중국인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은 불과 3%대로 20년 전에 비해 10분의 1로 떨어졌다고 한다. 홍콩 반환 이후 20년간 홍콩 주민들은 사회주의국가 중국이 어떤 나라인지를 분명하게 목도했다. 중국 정부는 ‘일국양제’를 공언했지만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병행할 수 있는 경제체제에 관한 원칙일 뿐이었다. 정치체제는 사회주의가 기본이 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유민주주의 구현은 이들의 타협 대상이 아니었다. 홍콩 주민들은 공산당 독재에다 주민 감시까지 받으면서 인권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국가의 실상을 피부로 느꼈다.

홍콩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중국인들은 공산당 통치를 피해 이주한 피난민이다. 대약진 운동과 문화혁명의 혼란을 피해 홍콩으로 건너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분명 공산당의 정체를 기억하고 있다.

이번에 범죄인 인도법이 이런 홍콩 주민들의 불안감에 불을 지폈다. 범죄인 인도법은 홍콩의 범죄혐의자를 중국으로 인도하는 법안이다. 사법기관이 공산당 아래에 있어 판결과 집행이 제멋대로라는 비판을 받는 중국 사법체계가 홍콩으로 확대된다는 사실이 이들을 분노케 했다. 당장 이 법안이 어떻게 작용할지도 불투명하다. 베이징의 정책을 비판하거나 홍콩 독립을 요구하는 시민 활동가들을 제거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홍콩 인구 7명중 1명꼴 시위 참여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한 펀드매니저는 “홍콩의 금융 상황을 예측하는 데도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이 법안이 시행된다면 금융분석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결국 홍콩이 70년 동안 쌓아올린 도시 브랜드는 망가지고 특권과 번영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것이라는 불안과 공포가 팽배하다. 이들이 지난 10일 거리로 나서 시위에 동참한 것이다. 시위 참가자는 홍콩 인구 일곱 명 중 한 사람꼴인 100만 명에 달했다.

물론 이들이 시위에 나선 것은 이 이유만이 아니다. 세계적 도시 홍콩이 중국의 한 도시로 왜소화할 것이라는 불안과 부동산 가격 하락, 가계부채 증가 등도 자리잡고 있다. 그동안 경제와 문화에서 세계적으로 우월하다고 자부해온 이들이다. 이번 시위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이래서 나온다.

홍콩은 그동안 세계 무역과 금융의 허브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 이후 본토로 들어가는 발판으로서의 역할도 해왔다.

하지만 시진핑 정권이 출범하고 중국 당국의 개입이 가속화될수록 투자 매력도는 떨어졌다. 해외 투자도 2015년부터 점점 감소하는 추세다. 위안화 예금도 2014년 말 약 1조위안에서 2017년 3월 5073억위안으로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 2003년부터 중국 광둥성에 역전당하고 있다. 홍콩증시 시가총액도 상하이증시와 선전증시에 추월당한 지 오래다. 더욱이 2014년 홍콩에서 벌어진 민주화 시위인 이른바 ‘우산혁명’ 이후 많은 기업이 자유주의 도시국가 싱가포르로 이동했다. 이번 시위의 가장 큰 승자가 싱가포르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금융허브 기능 실종 우려도 커

더욱 무서운 건 자산가치의 하락 가능성이다. 한동안 천정부지로 올랐던 부동산 가격은 2017년을 기점으로 떨어지고 있다. 작년 7월부터 12월까지 홍콩의 주택 판매가격지수 누적 하락률은 9% 이상에 달했다. 지난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0.5% 증가하는 데 그쳤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3분기 -1.7% 이후 거의 10년 만에 가장 낮은 증가율을 보였다.

미국 의회에서는 홍콩의 중국화가 진전되는 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미 의회는 홍콩의 금융허브 기능이 사라지는 데 대해 미국이 손을 놓으면 세계 금융시장에 돈이 돌지 않게 될 것이라고 걱정한다. 중국 정부가 완전히 홍콩을 자신의 수중에 넣는다면 미국이 손을 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미·중 통상 분쟁의 와중에서 홍콩의 금융허브 기능이 상실되면 중국에 가장 큰 타격이 될 것이라는 견해다. 이런 점도 홍콩 시민들의 불안감을 낳게 한다.

美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

미·중 통상 분쟁의 와중에서 이번 시위는 미·중 양국 모두에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사건이다. 이번 시위의 여파가 통상 분쟁에 영향을 끼칠 것은 분명하다.

당장 모건 오테이거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미국 정부는 홍콩 정부가 제안한 개정안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지난달 홍콩의 민주화 지도자인 마틴 리 전 민주당 창당 주석을 만난 자리에서 이번 법안이 홍콩의 법치주의를 위협한다고 우려했다. 그동안 줄곧 미국이 중국의 인권문제를 거론한 점을 감안하면 이번 시위와 관련한 중국의 조치에 대해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지금 시진핑 정권은 이번 시위를 강제 진압하면 국제사회 여론의 뭇매를 맞을 게 뻔하다. 통상 분쟁에서도 싸울 명분을 잃어버린다. 그렇다고 유화책을 쓰면 내부의 반란이 더욱 우려되는 상황이다. 다른 도시에도 파장이 미칠 수 있다. 중국 일당 체제를 개혁해야 한다는 자유주의 진영의 강력한 시그널이 이어지고 있다. 이제 시진핑 정부는 불편한 진실과 맞닥뜨려야 한다.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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