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통상외교의 기본부터 돌아볼 때

입력 2019-06-12 17:43  

미·중 분쟁에 끼인 한국 통상외교
통상이슈가 외교갈등 비화 않도록
단기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 말아야

최원목 <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불법 이민자 대처에 소극적인 멕시코 정부를 상대로 5% 관세 부과 카드를 꺼내들어 결국 항복을 받아냈다.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인 USMCA(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를 체결해 무관세 혜택을 보고 있는 멕시코로서는 수출의 40%를 차지하는 자동차산업부터 비상이 걸렸으니, 불법 이민자의 미국 진입 차단에 합의할 수밖에 없었다. 또 미국은 인도와 터키를 개발도상국 특혜관세 혜택(GSP)에서 제외한다고 선언, 이들 국가는 대미(對美) 수출액의 10% 이상을 타격받게 됐다.

한국, 일본, 유럽연합(EU)으로부터 수입되는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에 대해 국가안보를 이유로 25%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방침은 현재진행형이다. 우리 정부가 지난번 한·미 FTA 재협상 시 자동차 분야의 미국 요구사항을 모두 들어줬는데도 소용이 없었다. 설령 한국 자동차만 25% 관세부과를 면제해주더라도 일본과 EU산 수입자동차의 감소분을 한국산이 대체하면 미국 자동차산업 보호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에 쿼터 설정 등 방식으로 한국산 수입을 제한하려 들 것이다. 관세부과 면제를 얻어내기 위해 우리가 또 양보해야 하는 직간접적 실리(무기구입, 방위비 분담 증액 등)는 또 얼마나 될까. 가뜩이나 ‘중국 화웨이 때리기’에 한국도 총체적으로 동참할 것을 요구하는 상황 아닌가.

미국의 요구를 정부 차원에서 들어주면 중국 정부의 보복이 뒤따를지 모른다. 재협상까지 마친 한·미 FTA에는 ‘자국의 필수적 안보이익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조치’에는 FTA의 모든 의무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규정돼 있다(23.2조).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상의 국가안보를 이유로 한 예외조치가 ‘전쟁이나 그에 준하는 비상사태’에 한정된 것과 대비된다. 트럼프 진영의 일방적 안보조치 선언에 의해 언제라도 우리 수출품에 대해 추가 관세 및 쿼터를 취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FTA 조항에 스스로 합의해 준 우리 정부가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이제 ‘국가안보 조치’는 전가의 보도처럼 합법적으로 미국의 손에 쥐어졌다. 그러고도 FTA 재협상 타결 후 “미국에 빛 좋은 개살구만 주고 왔다”고 자축했던 우리 협상대표의 말이 다시 한 번 낯을 뜨겁게 한다. 최근 한·일 수산물 WTO 분쟁에서 패널판정을 뒤엎은 상소기구 판결을 이끌어낸 공로를 과대 선전하는 것도 그렇다.

상소기구 판결의 핵심은 패널 판정의 기준이 잘못됐기에 새로운 판정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측 수입금지 조치의 정당성이 최종 확인된 것처럼 정부는 발표했다. 대통령과 총리까지 나서서 실무 공무원들을 공개적으로 칭찬하고 식사 대접까지 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일본 때리기’를 가속화해 국민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면 말이다. 청와대는 “WTO 위생검역협정 분쟁에서 패널판정 결과가 상소심에서 뒤집힌 최초의 사례”라고 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기까지 하다. 제2차 미·EU 호르몬 소고기 분쟁 등의 전례가 있지 않은가.

민감한 국제통상 이슈일수록 외교적 갈등 요인으로 심화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은 통상외교의 기본이다. 속 쓰린데 뺨까지 맞은 격인 일본은 다양한 보복카드를 꺼내들고 있다. 우리 수출 수산물에 대한 검역을 강화하고 대우조선, STX, 성동조선해양 등에 대한 산업은행 및 수출입은행의 보조금 지급 이슈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한·일 간 대외통상 이슈를 감정싸움으로 접근하면 우리가 잃는 것이 더 많다.

총체적 난국을 겪고 있는 우리 대외통상체제가 미·중 무역전쟁 속에서 샌드위치 신세까지 돼 갈피를 못 잡고 있다. 동북아시아 안보·번영 공동체 형성을 위해서라도 단기적인 정치적 이용이 아닌, 장기적 안목에서 대외통상 관계를 관리해 나가는 것이 통상대국의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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