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초부터 붉은 수돗물로 3살 5살 아이들의 몸을 씻겼더니 피부발진이 생겨 깜짝 놀라 바로 짐싸서 속초에 있는 친정집으로 피난(?)왔어요.”
인천 영종도 하늘도시 A아파트단지에 거주하는 주부 김모씨는 지난 6일 붉은 수돗물 사태가 계속되자 아이들을 데리고 깨끗한 물을 찾아 강원도 속초시 친정으로 떠났다. 시와 상수도사업본부 등 관계기관은 수질검사에서 적합 판정이 나왔다고 주장했지만 엄마 입장에서 차마 붉은 물로 음식을 만들어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속초에 온 다음날부터 아이들 피부가 정상으로 되돌아와 한숨 돌렸다”며 “어린이집 출석문제로 오는 17일 다시 인천에 가야하는데, 벌써부터 걱정”이라고 말했다. 남편이 직장 때문에 영종도에 머물 수밖에 없어 이산가족이 된 상황을 설명할 때는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지난달 30일부터 인천 서구의 일부 아파트단지에서 시작된 붉은 수돗물(적수·赤水)사태가 보름째 이어지면서 주민들은 깨끗한 물을 찾아 외지로 떠나고, 생수만 사용하는 식당을 찾거나 아예 경기도 김포 등 다른 지역에서 원정모임을 갖는 신풍속이 나타나고 있다.
적수 직격탄을 맞은 인천 서구와 중구의 지역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깨끗한 물을 찾아 친정이나 시댁으로 피난간 사례가 계속 올라오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임산부나 유아들이 있는 가족들. 검단신도시·검암맘, 영종도엄마들의 모임 카페 등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다른 지역으로 피난간 회원들이 인천의 현지 소식을 묻는 등 하루빨리 수돗물이 정상화되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적수지역 주변 식당들도 찬바람을 맞았다. 붉은 수돗물로 음식을 조리할 것이란 생각에 손님들의 발길이 끊어졌다. 서구 당하동 B아파트 단지 인근에서 돈까스 전문점을 운영하는 업소 사장은 “이달초부터 붉은 물 사태로 손님이 줄기 시작하더니 어젠 평소의 절반으로 줄었다”며 “정수기에 조리수밸브까지 설치했지만, 수돗물 자체를 공포스러워하는 분위기 때문에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 동안의 영업손실에 대한 보상을 주장하기도 했다.
일부 지역 카페에서는 회원들을 상대로 생수를 사용하는 식당을 소개하는 ‘우리동네 가게 힘내세요’ 캠페인을 실시하고 있다. 생계 위협을 받는 동네식당 살리기 운동이다. 회원들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붉은 물 사태를 극복하기 위한 자발적인 운동이라고 소개했다.
지난 12일 오후 서구 원당동 C아파트단지에서 만난 주부 정모씨는 “붉은 수돗물이 왜 2주일째 나오는지, 음용해도 전혀 문제가 없는지, 언제 해결되는지 알 수 있는게 전혀 없다”며 “가급적 외식은 자제하고 꼭 필요한 경우 김포까지 건너가 모임을 하고 돌아온다”며 불편을 호소했다. 이 아파트단지에는 자동차로 15분 거리 있는 김포지역 빨래방업소들이 매일 찾아와 빨래들을 수거해 가는 새로운 비즈니스가 생겼다. 그녀는 “정부나 지자체의 생수 공급은 전혀 없으며, 개인이 각자 수퍼에서 구입해 음식조리나 아이들 세면에 사용한다”고 말했다. 어른들은 붉은 수돗물로 샤워를 하고 마지막에 생수로 한번 씻어낸다며 웃었다.
정부원인조사반은 지난 7일부터 환경부 5명, 한강유역환경청 2명, 국립환경과학원 1명, 한국환경공단 4명, 한국수자원공사 5명, 학계 1명 등 분야별 전문가 4개팀 18명으로 구성해 원인조사에 들어갔다. 이달 말 종합조사 결과를 발표한다. 13일 인천시에 따르면 적수가 발생한 지난달 30일부터 6월12일까지 적수 발생 신고건수는 1만3600여건에 달했다. 시 관계자는 “수돗물 적수 발생 해결을 위해 서구에 3억원, 중구 2억원의 긴급 특별조정교부금을 교부해 주민들에게 생수 지급 등 불편사항에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인천=강준완 기자 jeff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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