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도원 기자 ] “부적절합니다. 또 ‘척하면 척’ 논란을 불러일으키게 됐잖습니까?”
지난 10일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한국은행에 기준금리 인하를 압박하는 듯한 발언을 하자 당내 경제통 의원은 난감하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이 원내대표는 이날 고위당정청협의회에서 “대외 경제 여건이 악화되고 있다”며 “재정 외에 금융·통화정책도 구조적으로 확장 정책을 펼치는 데 꼭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회의가 끝난 뒤 기자가 ‘한은에 금리 인하를 요구한 것이냐’고 묻자 “확장 재정만으로는 부족하다”며 금리 인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 원내대표 발언 이틀 후인 지난 12일 이주열 한은 총재는 “경제 상황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해 나가겠다”며 금리 인하의 ‘신호등’을 켰다. 지난달 31일 “금리 인하로 대응할 상황은 아직 아니다”고 선을 그은 지 10여 일 만에 돌연 방침을 바꾼 것이다.
이 총재 발언 후 정치권과 경제계에선 또다시 ‘척하면 척’ 논란이 일었다. 2014년 당시 금리 인하를 지지했던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성태 한은 총재를 만난 뒤 기자간담회에서 “금리의 ‘금’ 자도 말하지 않았지만 ‘척하면 척’ 아니겠냐”고 한 발언을 연상시켜서다. 당시 한은은 최 부총리 발언이 나온 후 결국 한 달 만에 금리를 인하해 논란을 키웠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을 지낸 강명헌 단국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 원내대표 발언이 이주열 총재에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적절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도 “정치인들이 한은의 독립성을 훼손할 만한 발언을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박근혜 정부가 금리 인하를 압박해 한은의 독립성과 권위, 신뢰가 무너졌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금 여권에서는 “여당에서 이 정도 신호를 보내면 알아서 움직여야 하지 않냐”는 기류가 강하다.
“2014년 당시의 ‘척하면 척’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전형적인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다.” 우연의 일치라고 볼 수 있지만 한은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가 개운치 않은 것도 사실이라는 금융권 관계자의 관전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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