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두현 기자 ] 일본 도요타가 세계 자동차업계 1위에 오른 지 18개월 뒤인 2009년 말. 미국에서 도요타의 렉서스 차량이 시속 190㎞로 폭주하는 바람에 일가족 4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도요타는 운전 부주의로 인한 급발진이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그러나 ‘가속페달 매트 끼임’ 등 안전 결함이 발견돼 1000만 대 이상의 대량 리콜 사태를 맞았다.
당시 연 매출이 20% 넘게 줄었다. ‘잔고장 없는 차’로 불리던 브랜드 이미지도 심각하게 훼손됐다. 도요타는 이 위기를 지렛대 삼아 품질 향상에 전력을 기울였다. 신규 플랫폼을 도입하고 ‘사내 컴퍼니’ 제도를 활용하는 등 안간힘을 썼다. 《도요타의 품질》 《도요타의 원가》 등 유명한 경영 바이블이 이때 나왔다.
도요타는 지난해 연 매출 30조엔(약 320조원)의 최대 실적을 올렸다. 하지만 도요다 아키오 사장은 “시장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도요타는 괜찮다’는 생각은 위험하다”며 위기의식을 강조했다. 그제도 주주총회에서 임원·간부 임금 5~10%를 삭감하며 “‘문제가 없다’거나 ‘걱정하지 말라’는 말은 도요타에 가장 위험한 언급”이라고 말했다. 미래 대비가 그만큼 절박하다는 얘기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도 위기 관리와 미래 예측에 남다른 감각을 가졌다. 이 회장은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올린 2002년, 사장단 송년모임에서 “5년, 10년 뒤 무엇을 먹고살지 생각하면 등에서 식은땀이 흐른다”며 경영진을 다그쳤다.
1993년 프랑크푸르트에서는 ‘신경영 선언’과 함께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6개월 동안 왼손으로만 생활하고 1년간 하루 한 끼만 먹기도 했다. 스스로 변화와 자극을 체험하기 위해서였다. 이 모든 게 ‘변하지 않으면 망한다’는 위기의식의 발로였다. 그 덕분에 삼성은 국내 우량기업을 넘어 글로벌 일류기업으로 성장했다.
스티브 잡스는 2005년 스탠퍼드대 졸업식 축사에서 “나는 아직도 배고프다”며 새로운 꿈을 향해 나아갈 것을 촉구했다. “계속 갈망하라. 여전히 우직하게(Stay hungry. Stay foolish)!”
이런 경영자들이 꿈꾸는 미래는 신산업과 신기술 개발, 기업의 영속성과 문명의 풍요가 한데 어우러지는 세상이다. 도요타가 실적 잔치 대신에 차세대 제품 등 미래 투자에 자원을 집중하기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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