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원재료공장 3개로 확대
日 무라타 등 선두 추격 본격화
[ 고재연 기자 ] 지난 13일 부산 송정동 삼성전기 부산 사업장 제1공장. 타일 크기의 얇은 세라믹 판을 수만 개의 칩으로 잘라내는 ‘절단 공정’이 한창이었다. 높이가 5㎜도 되지 않는 판 안에는 세라믹 시트(유전체)와 니켈(전극)이 번갈아가며 600겹 이상 쌓여 있다고 했다. 작업자들은 불순물을 태우기 위해 절단한 칩을 1000도 이상 고온으로 약 20시간 동안 가열한다. 전장용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가 완성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무려 43일. 회사 관계자는 “쌀 한 톨보다 작은 3.2㎜(가로)×2.5㎜(세로) 크기의 전장용 MLCC가 만들어지기까지 ‘장인이 도자기를 굽듯’ 긴 시간과 기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MLCC는 전기를 저장했다가 반도체 등 부품이 필요한 만큼 공급하는 ‘댐’ 역할을 한다. 제품 경쟁력은 쌀 한 톨(15㎜)보다 훨씬 작은 제품에 얼마나 얇게, 촘촘히 쌓느냐에 달렸다. 중저가 제품을 만드는 대만 업체 등과 달리 삼성전기는 세라믹 원재료를 부산에서 직접 생산한다. 세라믹 재료에 어떤 물질을 첨가하고, 어떤 배합으로 ‘반죽’을 만드느냐에 따라 MLCC 성능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600겹 정도를 쌓았지만 최근 공정 기술이 발전하면서 1000겹으로 쌓아 올리는 게 가능해졌다.
전기차와 자율주행차에 들어가는 고사양 MLCC는 ‘안전’을 책임지는 핵심 부품이다. 운전자 안전과 직결되는 핵심 부품인 엔진전자제어장치(ECU), 크루즈 컨트롤(반자율주행), 에어백 시스템 등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150도 수준의 고온과 85%에 달하는 높은 습도 등 극단적인 환경에서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MLCC에 이상이 생겨 주요 반도체에 전력을 공급하지 못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미세 공정과 높은 기술력이 필요한 만큼 부가가치도 높은 편이다. 제품 가격은 정보기술(IT)용과 비교해 3~10배 비싸다. 스마트폰 1개에는 800~1000개의 MLCC가 들어가는 데 비해 전기차 1대에는 최대 1만5000개가 필요하다. 시장을 선점하면 규모의 경제도 그만큼 커진다.
2016년 전장용 MLCC 생산을 시작한 삼성전기는 생산 비중을 획기적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이 회사는 IT용 MLCC 시장에서는 글로벌 2위이지만, 전장용 MLCC에서는 아직 후발주자다. 일본 무라타, TDK 등 선두 업체들을 따라잡기 위해 ‘원재료 내재화’에 집중하고 있다. 부산 사업장에 내년 상반기 완공을 목표로 원재료 공장을 새로 짓고 있다. 준공 후엔 공장이 2개에서 3개로 늘어난다. 부산 사업장은 원재료 혁신 및 연구개발(R&D) 센터로 육성하고, 올 하반기 완공되는 중국 톈진 공장은 제품 생산기지로 삼을 계획이다. 정해석 삼성전기 컴포넌트전장개발 그룹장(상무)은 “부산과 톈진에서 전장용 MLCC를 본격적으로 생산하면 2022년 이 분야에서도 글로벌 2위를 달성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산=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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