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 일가 회사에서 판매하는 김치와 와인을 계열사에 고가로 강매한 태광그룹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됐다. 140억원어치 김치 등을 강제로 떠 안은 계열사들은 직원들 집으로 월급 대신 김치를 배송하거나 복지기금으로 회계처리를 했다. 심지어 김치는 일반 김치보다 2~3배 비쌌지만 식품위생법 기준도 맞추지 않은 불량 김치인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위는 태광그룹 소속 19개 계열사가 총수일가가 100% 지분을 보유한 '티시스'의 사업부인 '휘슬링락CC'로부터 김치를 고가에 구매하고, 역시 총수일가 지분율 100%인 '메르뱅'으로부터는 합리적 기준 없이 와인을 사들인 사실을 적발했다.
공정위는 17일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과 김기유 그룹 경영기획실장은 물론 태광산업과 흥국생명 등 19개 계열사 법인을 검찰에 고발하고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총 21억8000만원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공정위에 따르면 태광그룹 계열사들은 2014년 상반기부터 2016년 상반기까지 그룹 계열 골프장인 휘슬링락CC가 공급한 김치 512t을 95억5000만원에 구입했다.
김기유 실장이 김치 단가를 종류에 관계없이 10㎏에 19만원으로 일방적으로 결정하고서 계열사별 구매 수량까지 할당해 구매를 지시했고, 각 계열사는 이를 받아 다시 부서별로 물량을 나눴다. 계열사들은 이 김치를 직원 복리후생비나 판촉비 등으로 사들여 직원들에게는 급여 명목으로 택배를 통해 보냈다.
직원들이 김치를 직접 산 것은 아니고 '보너스'처럼 받은 것이지만 태광산업 등 일부 계열사는 이 김치를 사려고 직원들의 사내근로복지기금에도 손댄 것으로 드러났다.
휘슬링락CC 김치를 계열사들이 일사불란하게 구매하게 된 것은 휘슬링락CC가 속한 회사인 티시스가 총수일가가 100% 지분을 보유한 특별한 지위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휘슬링락CC는 원래 동림관광개발(총수일가 지분 100%)이 설립한 회원제 골프장이었으나 영업부진으로 고전하다 티시스에 합병됐다. 이후 티시스의 실적까지 나빠지게 되자 이를 만회하고자 '김치사업 몰아주기'에 나서게 됐다는 것이다.
심지어 임직원들이 받은 김치는 제대로 된 김치도 아니었다. 강원도 홍천의 한 영농조합에서 위탁 제조됐으나 식품위생법에 따른 시설기준이나 영업등록, 설비위생인증 등을 준수하지 않아 고발돼, 현재 재판을 받는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이 김치는 월등히 비쌌다. 알타리무김치든 배추김치든 1㎏당 1만9000원으로 계열사에 팔렸다.
CJ '비비고' 김치의 경우 배추김치는 ㎏에 6500원, 알타리무김치는 7600원이라는 점에서 태광의 '회장님표' 김치는 2~3배 비싼 것이다. 휘슬링락CC 김치의 영업이익률은 43.4~56.2%에 달해 2016~2017년 식품업계 평균 영업이익률(3~5%)의 11~14배에 달한다.
태광그룹은 김치뿐만 아니라 와인 판매를 통해서도 총수 일가의 배를 불린 것으로 드러났다.
태광그룹은 총수일가가 지분 전부를 가지고 있는 와인도소매업체 메르뱅이 독점 수입한 와인을 명절 선물 등으로 강제 판매하고, 이 과정에서 사내근로복지기금이 사용했다. 당시 계열사에 판매된 와인 가격은 2병에 10만원 수준이었으며 메르뱅은 2014년 7월부터 2016년 9월까지 총 46억원어치의 와인을 판매한 것으로 조사됐다. 계열사에 김치와 와인을 강제로 팔아 총수 일가가 벌어들인 돈은 최소 33억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위 조사 결과 휘슬링락CC와 메르뱅은 이 전 회장 일가에 각각 25억5000만원, 7억5000만원을 배당 등으로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태광그룹은 계열사 구매 물량을 늘리다가 공정위 조사가 시작된 2016년 9월 판매를 중단했다.
공정위는 이 전 회장 일가가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는 휘슬링락CC와 메르뱅이 김치와 와인 강제 판매를 통해 기업가치를 높이고 향후 경영권 승계 등에 이용될 수 있다고 보고 과징금 등 제재를 결정했다.
또 김치·와인 판매를 지휘한 이 전 회장과 김 실장을 수사기관에 고발하기로 했다. 공정위는 이 전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그룹 경영기획실을 통해 그룹 경영을 사실상 총괄했다고 봤다.
공정위는 이들 회사의 매출액 대부분이 내부거래를 통해 이뤄진 것은 상당한 규모의 거래를 통해 총수 일가에 부당한 이익을 제공한 행위로 판단했다.
김성삼 공정위 기업집단국장은 "태광그룹의 부당이익 제공 행위로 총수 일가의 지배력 강화와 편법적인 경영권 승계 등 경제력 집중 우려가 현실화했다"며 "골프장, 와인유통 시장에서의 경쟁까지 저해되는 결과가 초래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조치는 기업집단 내 계열사들이 일사불란한 지휘 체계하에 합리적 고려나 비교 없는 상당한 규모의 거래를 통해 총수일가에게 부당한 이익을 제공한 행위에 대한 최초의 제재 사례"라고 밝혔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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