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8월 전기료 1만원씩↓…적자 韓電 '눈물의 인하'

입력 2019-06-18 17:45  

'누진제 완전 폐지' 대신에
여름에만 구간 확대 확정



[ 조재길/구은서 기자 ]
정부가 매년 7, 8월 주택용 전기요금을 깎아주는 누진제 개편안을 확정했다. 누진제 전면 폐지를 주장해온 여론과 상반된 결론인 데다 한국전력이 해마다 3000억원 가까운 손실을 떠안아야 해 논란이 예상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8일 ‘민·관 합동 전기요금 누진제 태스크포스(TF)’에서 여름철에만 누진구간을 확장하는 전기요금 개편안을 최종 권고했다고 발표했다. TF는 이달 초 △하계(7, 8월) 누진구간 확대(1안) △하계 누진단계 축소(2안) △누진제 완전 폐지(3안) 등 세 가지 방안을 내놓고 여론을 수렴해 왔다.

이번 개편으로 누진 1단계 상한은 기존 200㎾h에서 300㎾h로, 2단계 상한은 400㎾h에서 450㎾h로 조정된다. 기존 1, 2단계 구간의 전력 소비자가 여름철에 전력을 50~100㎾h 더 써도 값싼 요금을 적용받는다는 의미다. 현행 누진제는 1단계(200㎾h 이하)에 ㎾h당 93.3원, 2단계(201~400㎾h) 187.9원, 3단계(400㎾h 초과)는 280.6원을 부과한다. 할인 혜택을 받는 가구 수는 작년 기준 1629만 가구다. 월평균 할인액은 가구당 1만142원이다. 일각에선 정부와 여당이 내년 4월 총선을 겨냥해 누진제 폐지란 근본 처방 없이 여름철에만 한시적으로 할인을 유도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누진제를 전면 폐지할 경우 1400만 가구의 전력 저소비층 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전기료 인하' 생색은 정부가 내고…한전이 매년 3000억 '덤터기'

민관 합동 전기요금 누진제 태스크포스(TF)가 18일 확정한 주택용 전기요금 개편안의 결론은 일찌감치 정해져 있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TF가 이달 초 제시했던 △하계(7, 8월) 누진구간 확대(1안) △하계 누진단계 축소(2안) △누진제 완전 폐지(3안) 중 1안이 가장 많은 가구에 요금 인하 혜택을 줄 수 있어서다. 이에 따른 손실은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국전력이 사실상 떠안게 됐다. 정부와 여당이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또다시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 정책을 내놨다는 지적이다.


다음달부터 1600만 가구 혜택

TF가 최종 권고한 1안은 매년 7, 8월 별도의 누진구간을 적용하는 방식이다. 1, 2단계의 상한구간이 각각 50~100㎾h만큼 확대되기 때문에 에어컨을 더 많이 써도 그만큼 낮은 요금을 내게 된다. 7, 8월 이외 시기엔 현행대로 1단계(200㎾h 이하)에 ㎾h당 93.3원, 2단계(201~400㎾h)에 187.9원, 3단계(400㎾h 초과)에 280.6원씩의 요금을 납부하게 된다.

이번 누진구간 확대 조치로 총 1541만(평년)~1629만(폭염 때) 가구가 요금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월평균 할인액은 가구당 9486~1만142원이다. 할인율로 따지면 2개월 동안 평균 15.8~17.8%다.

TF는 “여름철 전력 사용이 급증하는 소비 패턴에 맞춰 가능한 한 많은 가구에 요금 인하 혜택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며 “여름철 전력 수급관리 차원에서 누진제의 기본 틀은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당정은 일찍부터 1안을 낙점했다. TF 내에서도 이런 의견을 개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1600만여 가구에 여름철마다 폭넓은 요금 인하 혜택을 줄 수 있어서다. 다만 한전은 매년 2536억~2847억원을 추가 부담해야 한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정부가 예산으로 한전 부담액의 일부를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면서도 “예산의 경우 국회 심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90%는 누진제 폐지 원했는데”

작년 폭염 때 강하게 제기했던 누진제 폐지가 또 미뤄지자 소비자들은 반발했다. 당시 누진제 폐지를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이 쏟아졌고, 이번 누진제 TF가 한전 홈페이지를 통해 수렴한 여론 역시 90% 정도가 ‘폐지’에 찬성했다. TF가 당정 요구에 밀려 여론과 다른 결과를 선택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주택용에만 적용되는 누진제를 완전 폐지하면 계절에 상관없이 쓴 만큼만 요금을 내면 된다. 해마다 반복되는 누진제 논란을 잠재울 수 있다. 선진국에선 누진제가 없거나 최대 1.5배 정도다. 누진제를 폐지할 경우 총 887만 가구의 요금이 상당폭 낮아지지만 1416만 가구에 달하는 전력 저소비층 부담은 매달 4000원가량 오른다는 게 당정에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정부와 한전은 전기요금 공급약관을 개정해 이사회 의결을 거친 뒤 정부에 인가 요청을 할 계획이다. 산업부는 전기위원회 심의 및 인가 후 7월부터 새 요금제를 적용하기로 했다.

한전 매년 3000억원 손실 불가피

정부는 일단 한전이 7, 8월 전기요금 인하에 따른 재무 부담을 지되 추후 예산 지원에 나서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요금 인하액이 매년 2536억~2847억원에 달할 정도로 큰 금액이어서다.

하지만 정부 지원이 실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작년 7, 8월 전기요금 한시 인하 때도 정부는 3600억원의 한전 부담을 덜어주겠다고 했으나 최종적으로 350억원을 보전하는 데 그쳤다.

더구나 한전이 작년에 이어 올 1분기에도 6000억원 넘는 영업적자를 기록한 상황이어서 재무 부담은 훨씬 클 수밖에 없다. 권기보 한전 영업본부장은 “원전 가동률을 급격히 늘리지 않는 한 재무구조가 당분간 좋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장병천 한전소액주주행동 대표는 “이번 누진제 개편은 한전 적자를 강요하는 개악 안으로 주주 손해가 불가피하다”며 “정부와 한전을 대상으로 집단소송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노동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전기요금을 깎아준다고 그 비용이 없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총선용 생색내기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전이 손실을 계속 부채로 쌓아놓다가 한계에 다다랐을 때 전기요금을 올리면 소비자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정부 예산을 투입하면 결국 세금을 쓰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재길/구은서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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