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電 이사회의 반란…7~8월 전기료 인하 '제동'

입력 2019-06-21 17:55   수정 2019-06-22 11:09

경영진 배임소송 당할라
'누진제 완화' 개편안 보류



[ 조재길/구은서 기자 ]
한국전력 이사회가 21일 매년 7~8월 전기요금을 깎아주는 주택용 전기요금 개편안을 보류시켰다. 영업손실을 보고 있는 한전이 매년 약 3000억원의 요금할인 비용까지 떠안을 경우 경영진이 배임 소송을 당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전은 21일 서울 서초동 한전아트센터에서 이사회를 열어 정부의 누진제 개편안을 반영한 ‘전기요금 공급약관 개정’을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사회는 김종갑 사장을 포함한 상임이사 일곱 명과 김태유 의장(서울대 공대 명예교수) 등 비상임이사 여덟 명으로 구성돼 있다. 김 의장은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아 일단 보류하기로 했다”며 “가급적 빨리 다음 일정을 잡아 재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주택용에만 적용되는 누진제를 전면 폐지하는 안 대신 매년 여름철 누진 1, 2단계 상한을 50~100㎾h 확대해 1500만~1600만 가구에 두 달간 월 9000~1만원씩 할인해주는 개편안을 확정했다. 이에 따른 한전 부담액은 매년 2536억~2847억원으로 추산됐다. 이날 이사회에서는 한전의 추가 부담액에 대한 정부 지원방안이 미흡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 이사회 배임 두려웠나…"정부, 확실한 손실보전 방안 내라"

한국전력 이사회가 21일 ‘전기요금 공급약관 개정’ 의결을 보류한 것은 초유의 사태다. 정부가 주도해 마련한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안’에 국내 최대 공기업이 반기를 든 셈이기 때문이다. 다음달부터 두 달간 1500만~1600만 가구를 대상으로 월 1만원 안팎의 냉방 요금을 깎아주려던 정부 계획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이사들 “이용자 부담 원칙 지켜야”

15명으로 구성된 한전 이사회가 누진제 개편안에 반발한 것은 적자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정부 정책에 따른 손실(매년 2536억~2847억원)을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어서다. 한전은 작년 2080억원 영업 적자(연결재무제표 기준)에 이어 올 1분기에도 629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내부 보고서에 따르면 한전은 올해 1조5000억원의 영업손실을 낼 것으로 전망됐다. 이 때문에 이사회에선 비상임이사를 중심으로 “정부가 여름철 전기요금 할인에 따른 적자 보전 방안을 갖고 와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 비상임이사인 최승국 태양과바람에너지협동조합 이사는 이사회 개최 직전 기자들과 만나 “에너지도 소비재이기 때문에 원가 반영과 이용자 부담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예산을 투입해 한전의 손실액 일부를 보전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한전 이사들을 설득하기엔 역부족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가 제시한 손실 보전액이 연간 700억~1000억원 정도이고 이마저도 국회 승인을 얻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예상에서다. 야당은 이번 누진제 개편안이 내년 총선을 겨냥한 ‘선심성 요금 할인’이라며 반발해 왔다.

한전 소액주주들이 경영진을 상대로 배임 소송을 경고한 것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장병천 한전 소액주주행동 대표는 “한전이 돈을 벌어 이자도 못 내는 상황에서 정부가 추가 적자를 강요하는 개악안을 내놨다”며 정부와 한전을 상대로 집단 소송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따라 한전은 누진제 개편안을 수용할 경우 업무상 배임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대형 로펌에 법적 검토를 의뢰한 데 이어 이날 이사회에서 법리 검토 결과를 공유했다.

정부 “요금인하 소급적용도 가능”

이사회 반발로 정부의 7, 8월 전기요금 인하 계획은 제동이 걸리게 됐다. 이달 안에 이사회 재소집과 정부 전기위원회 심의·인가 절차를 모두 거치기엔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한전의 손실 보전 방안을 서둘러 마련한 뒤 재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한전 이사회를 재소집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지는 않다”며 “일정이 지연되더라도 추후 소급 적용해 요금을 할인해주는 방법도 있다”고 설명했다.

작년 폭염 때도 주택용 누진제 폐지 여론이 높아지자 정부는 7, 8월 전기요금을 뒤늦게 소급해 깎아줬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누진제 한시 완화로 발생한 한전 손실 3587억원을 보전하는 방안을 찾겠다고 약속했으나 결국 353억원만 부담했다.

실질적인 재원 보전 방안이 마련될 때까지 누진제 개편안이 난항을 겪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강승진 한국산업기술대 에너지대학원 교수는 “공기업 이사회여서 당연히 가결될 줄 알았는데 보류돼 깜짝 놀랐다”며 “확실한 손실 보전안을 들고 오라는 신호를 이사회가 정부에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조재길/구은서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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