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 부회장 의견 경청하고
토론서도 '내가 옳다' 고집 안해
임원 인사에선 '순혈주의' 배격
[ 황정수/고재연 기자 ]
LG 계열사 경영진이 회장에게 중장기 전략 등을 보고하는 LG 사업보고회의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계열사 프레젠테이션(PT) 시간은 단축됐지만 회장과 임원 간 토론은 치열해지고 길어졌다. 구광모 LG 회장 취임 이후 생긴 변화다. 구 회장이 보고 자료를 상세히 파악하고 사업을 심층 분석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시작과 동시에 핵심을 꿰뚫는 구 회장의 질문을 받다 보면 자연스럽게 깊이 있는 토론으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빨라진 LG
오는 29일이면 구 회장 취임 1주년이 된다. 경제계에선 ‘1년 동안 LG가 달라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리를 중시하고 의사결정이 빨라졌다는 얘기가 특히 많다. 구 회장이 ‘고객을 위한 가치 창조’ 등 ‘업(業)의 본질’을 최우선 순위에 놓고 ‘과감한 경영 판단’을 내리는 게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지난 4월 LG전자가 경기 평택 스마트폰 라인을 베트남으로 옮기기로 한 게 좋은 사례다. 구 회장의 빠른 결단에 이전 계획을 보고한 LG전자 경영진도 놀랐다는 후문이다. LG 계열사 관계자는 “구 회장이 ‘고객 가치 제고’와 ‘이익’이라는 업의 본질을 지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외 이전’에 대한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다 최고 가치를 담은 스마트폰을 생산하는 데 어디가 유리한지만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구 회장의 경영 스타일은 상반기 사업보고회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계열사 경영진과의 토론에서 세세한 것보다는 사업의 큰 그림을 그리는 데 주력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LG 관계자는 “구 회장의 전략적 판단에 놀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격식 대신 실용성 중시
구 회장의 리더십이 취임 1년 만에 LG 안팎에서 인정받게 된 요인으로는 ‘경청’, ‘겸손’, ‘통찰력’이 꼽힌다. 구 회장은 그룹 지주와 각 계열사에 포진한 부회장들의 의견을 듣고 적극 반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회장들도 구 회장을 믿고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한다고 한다. LG가 빨라진 원인 중 하나다. 구 회장이 얘기를 듣기만 하는 건 아니다. 자신의 생각을 감추지 않지만 토론 뒤 견해차가 좁혀지지 않아도 ‘내가 옳다’고 강요하지 않는다. LG 관계자는 “구 회장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 스타일”이라며 “젊지만 충분히 얘기가 통하는 리더”라고 말했다.
‘격식’을 싫어하고 ‘실용’을 중시하는 것도 구 회장의 리더십을 돋보이게 하는 요소로 평가된다. 자신을 ‘회장’이 아니라 ‘대표’라고 칭한다. ‘직위’보다는 ‘직무’를 중시하며 일하겠다는 구 회장의 지론이 반영된 것이다. 이런 스타일은 인사에도 드러났다. 구 회장은 지난해 ‘순혈주의’를 버리고 외부 인사를 핵심 임원으로 영입했다. 지난해 11월 3M 출신 신학철 부회장을 LG화학 대표로 영입한 것이 대표적이다. 임직원에 대한 배려도 두텁다. LG는 서울 여의도 트윈타워 동관에 명상실과 간이 운동공간을 조성했다. (주)LG 직원들에겐 이달부터 청바지와 운동화 착용도 허용됐다.
전장사업 시너지 고민
2년 차를 앞둔 구 회장의 고민은 적지 않다. 최근엔 LG라는 브랜드 이미지 향상에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객가치를 높일 수 있는 좋은 제품을 만드는 데는 최고 인재 영입이 가장 중요한데, 이를 위해선 LG가 ‘가장 신뢰받는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구 회장이 LG테크컨퍼런스 등 인재 영입 행사에 빠지지 않는 것도 이런 관심이 반영된 결과다.
사업 구조 재편도 관심사로 꼽힌다. LG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사업포트폴리오 조정에 나서고 있다. 연료전지사업 등에서 철수하고 오스트리아 ZKW 인수 등을 통해 전장(차량용 전자장치)사업에 뛰어들었다. 구 회장은 자동차 연관 사업을 하고 있는 LG디스플레이, LG전자, LG화학 등의 시너지 창출 방안을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OLED TV의 시장 확장, 5세대(5G) 이동통신 시장에서 LG 스마트폰의 점유율 확대 등 기존 사업에 대한 전략도 심사숙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황정수/고재연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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