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업 얘기 안 듣고 '만들었으니 따르라'는 법이 너무 많다

입력 2019-06-28 17:53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기업현실 반영못해 대혼란 우려
산안법·화관법 모호한 조항 많아 부작용 속출할 수도
경제 활력은커녕 경영의욕 꺾는 과잉 법령 정비 시급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내달 16일 시행을 앞두고 기업과 기업가, 직장인들에게 비상이 걸렸다. 근로자의 정신적·육체적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고, 회사에도 큰 비용부담을 초래하는 괴롭힘을 막기 위한 법안이 오히려 사내 소통을 방해하고, 악용될 소지도 다분해서다. 중소기업의 73%는 법 시행 사실조차 모른다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왕따 방지법’ ‘양진호 방지법’ 등으로 불리는 ‘괴롭힘 금지법’은 근로기준법과 산업재해보상법에 신설된 조항들을 일컫는다. ‘괴롭힘’ ‘정신적 고통’ 등의 개념이 모호한 탓에 4년 가까이 입법에 어려움을 겪다 작년 말 국회를 통과했다. 한 벤처기업인(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직원 무차별 폭행·폭언, 대형병원 간호사들의 ‘태움’ 관행 등이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게 입법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6개월 내 따돌림을 한 번 이상 겪은 직장인이 82.5%에 달한다(한국직업능력개발원)는 조사가 있을 만큼 후진적인 한국 직장문화에서 법 시행의 의미는 작지 않다. ‘직장 갑질’ 행위가 금지되고 위반자는 누구라도 신고할 수 있어 새 기업문화를 만들어가는 계기가 될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하지만 입법취지와 달리 투서 남발, 소통 단절 등의 부작용을 부를 것이란 우려가 만만찮다. 시류를 탄 졸속입법 탓에 모호한 조항이 많아서다. “지위, 관계의 우위를 이용해 신체·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라는 괴롭힘의 정의부터 아리송하다. 무엇이 모욕감을 주는 언행인지, 어느 정도가 회식 강요인지, 어떤 경우 연차 사용이 가능한지 등 구체적 상황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정의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2월 ‘예시 매뉴얼’을 냈지만 혼선은 그대로다. 매뉴얼에선 ‘사무직 입사 직원을 영업직으로 발령내면 괴롭힘’이라고 예시했다. 그러나 회사마다 또 사람마다 사정과 능력이 달라 ‘부당한 인사’로 단정하기는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러 번 등장하는 ‘정당한 이유 없이’라는 표현도 구체성을 결여하기는 마찬가지다.

덜컥 만들어 놓고 ‘무조건 지키라’는 억압적 입법은 한국에서 고질병이다. 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불운한 사고를 빌미로 불과 2주 만에 통과시킨 산업안전보건법(일명 김용균법)은 전형적인 예다. ‘급박한 위험’ ‘불가피한 사유’ 등의 막연한 표현으로 작업중지명령 요건과 범위를 규정해선 안 된다는 기업들의 정당한 호소는 외면받고 있다. 유해물질의 안전관리를 명분으로 발의 한 달 만에 통과된 ‘화학물질관리법’도 기업들을 질리게 하고 있다.

‘걸면 걸리는’ 법들이 형사처벌조항까지 갖고 있다는 점은 더 심각한 문제다. ‘괴롭힘 금지법’은 위반자에게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게 했다. ‘경영 판단’에 국가가 개입해 범죄로 낙인 찍고 형사처벌하는 나라는 한국 외에 찾아보기 힘들다. 오도된 정의감과 어설픈 도덕심을 앞세운 과잉입법을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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