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세 문제도 중병인데
기업들이 투자할 엄두 내겠나
정부도 경쟁한다는 각오로
정책 전환 서둘러
투자 매력 끌어올려야
권태신 <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 >
최근 우리 기업들의 해외투자 소식이 종종 들려온다. SK그룹이 지난해 베트남에 5억달러를 투자한 데 이어 올해도 10억달러 규모의 투자를 단행한다. 롯데는 미국 루이지애나 공장에 31억달러 규모로 투자한다. 기업들의 해외투자를 나쁘게 볼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지만 ‘기왕이면 한국에 투자하면 일자리도 늘고 참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한국은 투자처로서 매력을 잃고 있다. 작년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직접투자(FDI)는 170억달러였으나 국내 기업들의 해외직접투자(ODI)는 이의 세 배가량 되는 498억달러였다. 국내외 기업이 한국 투자를 기피하는 현상은 국제 비교를 해보면 명확히 드러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외국인투자 규모를 조사해보니 한국은 237개국 중 152위로 최하위권이었다.
‘한강의 기적’으로 추앙받던 한국이 어쩌다 이렇게 기업들로부터 외면받는 투자처가 됐을까. 한 기업인에게 물으니 “기업이 투자를 결정하는 요인은 크게 세 가지다. 규제 장벽이 낮아서 사업 활동이 자유롭거나, 조세 부담이 낮아서 비용이 적게 들거나, 노동시장 유연성이 좋아서 인재를 적재적소에 쓸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그게 영토도 작고 인구도 적고 자원도 없는 싱가포르 같은 나라에 기업들이 몰리는 이유”라고 했다. 정답이다.
한국은 안타깝게도 위 세 가지 요인 중 한 부문에서도 경쟁력이 없다. 우선 규제부터 보자. 한국은 규제 후진국이다. 오죽하면 ‘규제공화국’이라는 별명이 있겠는가. 중국이 하는 핀테크, 인도네시아도 하는 원격진료, 세계 각국이 활용하는 우버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대기업 규제, 중소기업 적합업종, 수도권 규제 등 한국에만 있는 ‘갈라파고스 규제’가 수도 없이 많다.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한국은 기업 규제 부담이 140개국 중 73위로, 우간다(57위)보다도 뒤처진다.
조세 부담은 또 어떠한가. 한국은 작년부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높은 법인세율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의 경제력이 OECD 평균에 못 미치는데 세금은 더 많이 내라고 하니 다들 투자를 기피하는 것이다. 큰 내수시장과 풍부한 자원을 보유한 미국은 법인세가 21%고, 전통적인 경제 강국인 영국은 19%인데, 한국은 무슨 자신감으로 25%나 부과하는지 모르겠다. 높은 세율이 당장의 세수 확보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겠으나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 자체를 갉아먹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노동시장 문제는 중병 수준이다. 얼마 전 민주노총에서 “우릴 건드리면 큰일난다고 느낄 정도로 투쟁하겠다”고 했다. “받은 것의 두 배 이상을 갚아주겠다”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주어를 민주노총에서 조폭으로 바꿔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내용의 공개 협박이다. 이것이 통하는 사회에서 어느 기업인이 마음 놓고 투자하고 고용하겠는가. 우리 정부는 상대가 노조라 해도 선을 넘은 불법행위에는 법에 따라 엄정 대처하는 것부터 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불법행위가 노동운동이라는 구실로 정당화될 순 없다. 최소한의 법도 안 지키는 환경에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가입을 추진하는 것은 중환자에게 치명적인 독약이 될 수 있다.
한국 경제 활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지난 18일 골드만삭스는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2.1%로,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당초보다 무려 0.5%포인트 낮은 2.0%로 전망했다. 그만큼 우리 경제의 추락 속도가 가파르다는 경고 신호로 봐야 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 기업을 향해 투자하라는 요구가 점점 커지고 있다. 하지만 기업이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먼저 아닐까. 눈을 조금만 돌려 해외 선진국을 보자. 선진국들은 기업이 투자하고 싶게끔 파격적인 혜택을 주면서 러브콜을 보낸다. 글로벌 기업들은 여러 국가의 러브콜 중 가장 매력적인 곳을 선택해 투자하고 있다.
기업만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지금은 각 나라 정부도 경제정책을 통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시대다. 이제 새로운 경제팀도 출범했으니, 정책의 대전환을 통해 한국이 매력적인 투자처로 거듭나길 두 손 모아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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