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갑영 칼럼] 현실화되는 脫원전의 사회적 비용

입력 2019-07-01 00:07  

석유왕국 사우디도 원전 비중 높이는데
한국은 脫원전 밀어붙여 국민부담 가중
이념 아닌 과학적 분석으로 방향잡아야

정갑영 <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前 총장 >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국을 찾으면서 양국의 석유화학 및 원전사업 등 대규모 경제협력이 구체화되고 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부총리와 국방장관을 겸하고, 석유재벌 아람코를 이끄는 실세로서 세계 에너지산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아람코는 작년에 1110억달러의 순이익(영업이익은 2129억달러)을 거둔 세계 최고의 국영 기업이다. 오랫동안 막대한 석유 자원으로 세계를 흔들어 왔던 사우디도 탈(脫)석유화를 천명하며 원전과 첨단 미래산업의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22조원 규모의 첫 원전사업을 발주하고, 2040년까지 17.6기가와트(GW) 규모의 원전 16기를 지어 원전 비중을 15%까지 높이는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반면 사우디와는 상반된 길을 선택한 한국은 이제 국내외에서 탈원전의 엄청난 비용을 톡톡히 치러야 할 것 같다. 대외적으로는 “국내에서 포기한 원전을 수출하겠다”는 명분과 신뢰의 구축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당장 한국전력의 부실화에 따른 막대한 비용부터 현실화되고 있다. 한전의 영업이익은 3년 전 12조원에서 2017년에 5조원으로 반 토막 나더니, 작년에는 208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는 급전직하해 1분기에만 벌써 630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물론 부실화의 가장 큰 원인은 탈원전에서 비롯됐다. 원전의 발전원가가 킬로와트시(kwh)당 62.5원에 불과한 반면 액화천연가스(LNG)와 재생에너지는 각각 122.45원과 168.64원에 달한다니, 원전 비중이 줄어들수록 손실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LNG와 석탄 가격마저 상승하니 적자가 눈덩이처럼 커졌다. 원전 이용률이 1%만 증가해도 1900억원의 이익이 발생한다고 하니 한전에는 탈원전이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인 셈이다. 실제로 불과 2년간의 탈원전 정책으로 무려 12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이 사라진 셈이다.

현재의 탈원전 정책은 경제학으로는 도무지 설명이 되지 않는다. 원가가 몇 배나 높은 LNG나 태양광 등으로 원전을 대체한다면, 요금을 대폭 인상하거나 재정 지원을 할 수밖에 없다. 물론 가격을 인상하면 산업 경쟁력이 떨어지고, 재정으로 메우면 국민 부담만 가중된다. 효율성을 포기하는 기회비용이 너무 커서 결국은 국민 경제에 큰 충격을 줄 수밖에 없다. 이 구조에서 혜택을 보는 이는 오로지 비싼 원가로 전기를 생산해서 한전에 판매하는 사람들뿐이다.

지금처럼 생산비는 높은데 가격을 낮추라고 강요하면, 공기업은 부실화되고 수없이 많은 왜곡이 발생한다. 원가가 높은 민간 기업은 경쟁에서 퇴출되지만 공기업은 그렇지 않다. 따라서 공기업도 효율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공공성을 담보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이유로 선진국에서는 전력도 대부분 민영화돼 있다. 만약 한전도 민영화됐다면, 지금과 같은 경제성 없는 탈원전은 시행되지 못했을 것이다.

전력요금 이외에도 탈원전이 나라 전체에 미치는 파장은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수십 년간 쌓아 온 원전의 경쟁력과 관련 산업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대학과 연구소에선 관련 전공이 속속 문을 닫고 있다. 게다가 석탄과 LNG, 태양광 패널 등으로 인한 대기오염과 환경문제 등을 고려하면 앞으로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은 가히 천문학적일 것이다. 반면 탈원전의 혜택이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구체적으로 설명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에너지는 산업 경쟁력의 원천으로 나라의 명운을 좌우할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탈원전의 손익계산서를 제시해야 한다. ‘차이나 신드롬’의 가능성과 미래에 닥칠 손익, 안전성 등을 전문가 집단에서 과학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긍정적 효과가 크다면 더 적극적으로 탈원전을 설득해야 하고,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잘못 설정했다면 더 멀리 가기 전에 수정해야 한다. 과학성과 합리성을 무시하고 정책을 집행한다면, 후일 그 책임을 누가 감당할 수 있겠는가. 마침 신임 정책실장이 스스로 “저는 코스트(비용)와 베니핏(편익)의 비교를 본업으로 하는 경제학자”라고 강조했다니, 이번 기회에 탈원전의 손익이라도 제대로 분석한다면 큰 업적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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