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이어 '환율 전쟁' 경고
통화가치 절하國 '보복관세' 준비
[ 주용석 기자 ]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전쟁 전선을 관세에서 환율로 확대하고 나섰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일(현지시간) 중국과 유럽연합(EU)의 환율조작 의혹을 제기하며 “미국도 맞대응해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을 상대로 막대한 무역흑자를 내고 있는 중국과 EU를 압박하는 동시에 달러화 가치 하락을 유도하기 위해 미국 중앙은행(Fed)에 기준금리 인하를 요구한 것으로 분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중국과 유럽은 미국과 경쟁하기 위해 대규모 환율조작 게임을 하고 있고 그들의 (통화) 시스템에 돈을 쏟아붓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도 응수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공손하게 앉아서 그들의 게임을 계속 지켜보는 멍청이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 EU의 환율조작 의혹을 걸고 넘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해온 트럼프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환율 문제를 입에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미국의 무역적자 악화가 직접적 계기가 됐을 가능성이 크다. 미 상무부는 이날 “5월 무역적자가 555억2000만달러로 전월 대비 8.4% 늘었다”고 발표했다. 특히 중국과 EU는 미국의 무역적자 1, 2위국이다. 미국은 중국과의 무역에선 302억달러 적자, EU와의 무역에선 169억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미국은 지난해에도 중국, EU와의 무역에서 각각 4192억달러와 1693억달러의 적자를 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 EU를 정조준한 배경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노리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분석된다. 우선 국내적으론 금리 인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Fed에 줄기차게 금리 인하를 요구해왔다. 지난 5월엔 아예 ‘1%포인트 금리 인하’라는 구체적 인하 폭까지 제시하기도 했다. Fed가 금리를 내리면 달러화 가치가 하락한다. 미국의 수출 경쟁력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 미국 경기의 하락 우려를 잠재우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대외적으론 관세전쟁뿐 아니라 환율전쟁을 본격화하는 측면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중국, EU 등을 상대로 ‘환율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미 행정부는 우선 무역협정에 ‘환율개입 금지’ 조항을 넣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개정한 미국·멕시코·캐나다 무역협정(USMCA)에 합의하면서 환율개입 금지 조항을 신설한 게 대표적이다. EU, 일본 등과의 무역협상에서도 이를 관철하려고 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더해 미 상무부는 “통화가치 절하 국가에 상계관계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했다. 무역 상대국의 통화가치 하락을 ‘부당 보조금’으로 간주해 보복관세를 매기겠다는 것이다.
미 재무부는 ‘환율조작 감시망’을 확대했다. 올 상반기 환율보고서에서 중국 한국 일본 독일 아일랜드 이탈리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베트남 등 9개국을 환율관찰대상국으로 지정했다. 작년 하반기 보고서 때(6개국)보다 대상국을 늘렸다. 특히 “환율시장의 투명성이 결여됐다”며 중국을 정조준했다. 미국은 중국과의 무역협상 과정에서도 기술이전 강요, 지식재산권 침해 등 불공정 무역관행 금지와 함께 위안화 환율조작 금지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중국의 환율조작 문제는 곧 재개될 미·중 무역협상의 핵심 의제 중 하나다.
미·중은 이번주나 다음주쯤 무역협상을 재개할 예정이다.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은 이날 “미·중 협상이 곧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도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곧 류허 부총리와 협상할 것”이라고 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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