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근로자는 "동결" 33%
[ 김익환/백승현 기자 ]
임금 근로자의 37%가 ‘내년 최저임금은 동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두 명 중 한 명(44.4%)꼴로 내년 최저임금을 올려선 안 된다고 답했다.
임시·일용직 근로자도 열 명 중 네 명(41.1%)꼴로 동결을 희망했다.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가 한창인 가운데 정부가 내놓은 설문조사 내용이다. 최저임금위원회를 향한 ‘속도 조절’ 메시지라는 분석이다.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는 4일 서울 명동 포스트타워에서 연 ‘최저임금, 국민에게 듣는다’란 토론회에서 이 같은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는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근로자와 자영업자 등 800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조사 결과 눈에 띄는 대목은 사업주가 아닌 근로자 상당수가 내년 최저임금 동결을 희망했다는 것이다. 동결 주장은 사업체 규모가 작을수록, 고용이 불안정할수록 비율이 높았다. 10인 미만 사업장에 속한 근로자 중 동결을 희망한 비율은 44.4%, 10~50인 미만 사업장은 36.8%, 50~300인 미만 사업장은 34.6%, 300인 이상 대기업 사업장은 33%가 동결을 원했다. 영세기업 근로자일수록 동결을 원하는 응답이 높게 나온 것은 이들이 임금소득 증가보다 고용 안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근로자들도 임금 인상보다 회사가 먼저 살아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조사 대상 범위를 고용시장 울타리 밖으로 넓혔다면 ‘동결’ 의견이 훨씬 더 많이 나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저임금위에서 노동계(근로자위원)는 내년 인상안으로 올해(시급 8350원)보다 19.8% 오른 1만원(월 환산액 209만원)을 제시했다. 경영계는 올해보다 4.2% 낮은 8000원을 제시해 논의 과정에서 큰 진통이 예상된다.
홍장표 "최저임금 너무 올라 자영업 곤경"…정부 '속도조절 메시지'
“가파르게 오른 최저임금으로 자영업과 중소기업을 하는 많은 분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홍장표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
“최저임금 인상으로 상용직 근로자들의 소득 증가 효과가 나타났지만 일부 임시·일용직 근로자와 자영업자는 불이익을 겪고 있다.” (정해구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4일 서울 명동 포스트타워에서 열린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주최 ‘최저임금, 국민에게 듣는다’ 토론회에서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설계하는데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정부 관계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을 여러 각도에서 수차례 언급했다.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가 한창 진행 중인 가운데 정부가 최저임금위원회를 향해 재차 ‘속도 조절’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최저임금 근로자들 “내년 동결하라”
토론회 첫 발제를 맡은 정한울 한국리서치 전문위원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자영업자뿐만 아니라 근로자 상당수도 ‘내년 최저임금은 동결해야 한다’고 응답한 내용의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를 보면 올해 최저임금(시급 8350원)에 대해 임금근로자는 ‘적당하다’는 의견이 많았고, 자영업자 등은 ‘높다’는 응답이 많았다. 하지만 눈에 띄는 대목은 근로자의 28%가 ‘현재 최저임금 수준이 높다’고 답한 점이다. ‘적당하다’는 응답은 49%였다.
내년 최저임금 인상폭과 관련해서도 근로자 37%가 ‘동결해야 한다’고 답했다. 올리더라도 1~5% 미만이어야 한다는 응답이 31%에 달했다. 인상률 5~10% 미만은 18%, 10% 이상은 13%였다. 근로자 68%가 내년 최저임금은 지금보다 5% 미만으로 올려야 한다고 답한 것이다. 자영업자 61%는 ‘동결’을 희망했다.
내년 최저임금을 동결해야 한다는 응답은 취약근로자일수록, 규모가 작은 사업장에 다니는 근로자일수록 비율이 높았다. 정작 최저임금 인상으로 혜택을 받아야 할 근로자들이 ‘그만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소득 증가보다 임금이 오르지 않더라도 고용 안정을 택한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내년 최저임금을 동결해야 한다는 항목엔 임시일용직 근로자 중 41.1%가, 상용직은 35.8%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사업체 규모별로는 10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자 44.4%가 내년 최저임금 동결을 희망했다. 10인 이상~50인 미만은 36.8%, 50인 이상~300인 미만은 34.6%, 300인 이상은 33%였다.
이번 조사는 정책기획위원회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한 것으로, 지난달 25~27일 전국의 만 19세 이상 임금근로자 500명과 자영업자·소상공인·기업체 대표 300명 등 총 800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 방식으로 이뤄졌다. 표본오차는 임금근로자의 경우 95% 신뢰수준에 ±4.4%포인트, 자영업자는 95% 신뢰수준에 ±5.7%포인트다.
“내년 최저임금, 경제상황 고려해야”
홍장표 위원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내년 최저임금은 일자리와 경제상황, 시장의 수용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합리적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은 “일부 근로자는 최저임금에 절실한 삶의 문제가 걸려 있고 소상공인의 경영상태는 악화되고 있다”며 “서로의 절실한 조건을 이해하고 최저임금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2년 새 30% 가까이 오른 최저임금으로 인한 현장의 호소도 쏟아졌다. 1995년부터 서울 종로 세운상가 먹자골목에서 백반집을 운영해온 이근재 씨는 “대기업은 최저임금이 올라도 상관없을지 모르지만 소상공인에게는 치명적”이라며 “임금을 줄 여력이 없는데 매년 최저임금이 오르는 데다 주휴수당까지 줘야 하니 살길이 막막한 지경”이라고 말했다. 이어 “1인당 인건비가 월 250만원으로 4명이면 1000만원인데 2년 새 부담이 월 291만원 늘었다”며 “1년에 3492만원이 더 들어가니 점심 장사로 먹고사는 처지에 부담이 크다”고 호소했다.
최저임금위는 지난 3일 오후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8, 9차 전원회의를 열어 노사 양측의 최초 제시안을 놓고 밤샘 협상을 벌였지만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했다. 전날 전원회의에서 경영계는 내년도 최저임금으로 올해(시급 8350원)보다 4.2% 낮은 시급 8000원, 노동계는 올해보다 19.8% 오른 1만원(월 환산액 209만원)을 제시했다.
합의안을 내놓기까지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최저임금위는 오는 9일 10차 전원회의를 재개한다.
백승현/김익환 기자 arg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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