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재혁 기자 ]
의인화한 동물 캐릭터들이 완벽에 가깝게 진짜처럼 등장한다. 원작 애니메이션보다 몰입감을 한층 높인다. 아프리카 초원을 배경으로 한 스크린의 색채는 대담하고 화려하다. 들소떼가 달리는 스펙터클한 장면들은 놀랄 만큼 강렬하고 치밀하다.
올여름 전 세계 극장가의 최고 화제작으로 주목받는 디즈니의 ‘라이온 킹’ 실사 버전(감독 존 파브로)이 11일 베일을 벗었다. 오는 17일 국내 개봉하는 이 작품은 20세기 최고 애니메이션 흥행작인 동명 원작(1994)을 첨단기술로 실사영화처럼 구현했다.
이야기는 원작을 거의 그대로 따라간다. 어린 사자 심바가 삼촌 스카의 음모로 왕이자 아버지인 무파사를 잃고 쫓겨난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던 심바는 의욕 충만한 친구인 품바(미어캣)와 티몬(멧돼지)의 도움으로 희망을 되찾는다. 어느 날 옛 친구 날라(암사자)를 만난 뒤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다.
‘라이온 킹’은 잘 알려져 있듯이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모티프로 전개한 이야기다. 이 덕분에 인생과 권력에 대한 훌륭한 교과서처럼 관객들에게 읽혀진다. 삶에서 마주치는 배신과 탐욕, 좌절과 두려움, 희망과 용기 등의 감정들을 날것으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사회상에 대한 성찰도 뛰어나다. 무파사와 스카의 통치 스타일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무파사는 대자연은 미묘한 균형을 이루고, 생명은 순환한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모든 생명체를 존중하고 먹이사냥도 최소한으로 줄인다. 진정한 왕은 빼앗는 자가 아니라 베푸는 자라는 게 그의 신조다.
‘아이언맨3’ ‘정글북’ 등을 연출한 존 파브로 감독은 이 영화에서 실사 영화 기법과 사진기법의 CG(컴퓨터그래픽)를 합친 혁신적인 스토리텔링 기술을 적용해 사실성을 강화했다. 그는 아프리카 여행을 하면서 자연환경과 동물들을 촬영한 뒤 스튜디오에서 게임엔진 내에 첨단 가상현실 도구를 이용해 가상현실 프로덕션 공간을 만들어냈다. 촬영진은 아프리카 초원의 가상현실 공간에서 영화를 만든 후 정교한 애니메이션 작업을 거치는 방식으로 실감도를 높였다. 아티스트와 테크니션, 실사 전문가, 첨단 애니메이터들로 이뤄진 복잡한 팀이 참여해 새로운 영화 제작 방법을 만들어냈다.
이런 첨단 기법들로 재탄생한 애니메이션 속 명장면들은 생동감이 넘친다. 제사장 라피카가 모든 야생동물들을 모아 놓고 어린 심바를 두 손으로 번쩍 들어올리며 새로운 ‘밀림의 왕’의 탄생을 알리는 장면은 전율이 흐를 만큼 압도적인 스펙터클을 선사한다. 아기 사자 심바는 애니메이션 속 앳된 모습과 똑 닮았다. 사자를 비롯한 야생동물은 물론 곤충과 초원의 풀, 바위까지 영화는 세밀하고 정교하게 잡아냈다. 새들이 물 위를 날아다니고 물소떼가 초원을 달리는 장면은 자연 다큐멘터리의 장관을 방불케 한다. 제작자 카렌 길크리스트는 “존 파브로 감독은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포착하고 싶어 했다”며 “완벽한 하늘이나 일출 장면 등을 섬세하게 묘사했다”고 칭찬했다.
동명 뮤지컬을 통해 익히 알려져 있듯, 영화음악가 한스 짐머와 팝스타 엘튼 존의 명곡들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 명곡들은 새롭게 편곡됐고, 비욘세의 신곡들이 곁들여져 귀를 즐겁게 한다. 날라의 목소리를 연기하는 비욘세가 청량한 보컬로 들려주는 신곡 ‘SPIRIT’에는 아프리카의 전통 선율과 영화의 주제가 어우러져 있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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