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7월19일(09:21)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국내 연기금, 공제회, 은행, 보험사 등 기관투자가들이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미국 칼라일 그룹이 최근 조성한 크레디트 오퍼튜니티 1호 펀드에 약 2억달러(약 2360억원)를 투자했다. 기업 인수합병(M&A)이나 자본 재조정 등을 위해 일시적으로 자금이 필요한 우량 기업에 대출을 제공하고 수익을 내는 펀드다. 국내 기관들이 투자이력(트랙레코드)이 없는 1호 펀드에 대규모 투자를 집행한 건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19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칼라일 그룹이 이달 전세계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모집한 24억달러 규모의 ‘칼라일 크레딧 오퍼튜니티 펀드’에 한국 기관투자자 10곳이 총 2억달러의 투자를 약정했다. IBK투자증권이 판매사로 참여했고, 현대인베스트자산운용이 국내 펀드 설정을 맡았다.
칼라일은 24억달러의 투자금에 레버리지(대출)를 더해 총 31억달러 가량을 기회추구형(opportunistic) 크레디트 전략에 투자할 예정이다. 주로 PEF가 대주주인 기업에 대출하는 직접대출(direct lending) 펀드와 달리 오퍼튜니스틱 크레디트 펀드는 일반 기업에도 자금을 빌려준다.
이번 펀드는 전세계에서 투자금이 몰리면서 당초 목표인 20억달러를 4억달러 가량 초과해 조성이 완료됐다. 국내에선 한국 투자자들의 보수적인 성향 때문에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분석이 많았다. 하지만 자금 유치 결과가 예상을 크게 웃돌았다는 전언이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1호 펀드로는 지금까지 가장 큰 규모의 투자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펀드의 투자전략이 국내기관들에게 생소한 오퍼튜니스틱 크레디트 전략임을 고려하면 더욱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지금까지 1호펀드는 투심위에서 부결될 것이 거의 확실해 투자 실무자들이 아예 검토를 시작하지도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글로벌 운용사들 사이에서 한국이 1호펀드의 불모지로 불린 배경이다.
업계 안팎에선 국내 기관투자자들이 지난 수년간 펀드와 프로젝트 평가에 대한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해외 운용사나 펀드 전략을 평가해 독립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수준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이번 투자가 가능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펀드 운용사가 전세계에서 2220억 달러의 자산(3월말 기준)을 운용하는 칼라일이란 점도 기관들의 투자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칼라일은 기업 대출채권 등에 투자하는 사모대출(private credit) 시장이 앞으로 사모주식(PE)에 비해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보고 회사의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2016년에는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에서 크레디트 투자를 이끌던 마크 젠킨스를 크레디트 부문 대표로 영입하기도 했다.
이규성 칼라일그룹 공동대표는 지난해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크레디트 시장은 약 20년 전 사모주식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며 "새로운 전략, 투자 상품과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개발될 수 있어 칼라일그룹이 성장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번 크레디트 오퍼튜니스딕 펀드에 투자심의위원으로 참여, 펀드의 투자결정에 깊숙이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펀드레이징 과정에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한편 칼라일이 이달 조성한 ‘칼라일 글로벌 인프라 펀드’에도 국내 PEF운용사 스틱인베스트먼트의 계열사 스틱얼터너티브자산운용 등이 5100만달러(약 598억원)을 투자했다. 투자자(LP)로는 NH투자증권, LS그룹 계열사인 예스코, 교원인베스트 등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한금융투자는 일부 투자분을 총액 인수해 셀다운(재판매)할 예정이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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