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문재인 케어, 접근성 확대보다 형평성 보장을

입력 2019-07-25 17:54  

健保 보장성 강화로 대형병원 쏠림 심해
우선순위 정해 필요한 의료수요 거르고
'고가 新藥' 혜택 부여 절차도 마련해야

방문석 < 서울대 의대 교수·재활의학 >



보장성 강화를 골자로 하는 ‘문재인 케어’로 인해 흑자 기조를 유지하던 건강보험 재정이 급격히 적자로 돌아서고 있다. 의료 혜택이 확대되면 당연히 보험 재정지출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선거 과정에서 국민의 부담을 키우지 않고 보장성을 강화하겠다는 현 정부의 공약이 있었지만, 보건의료 분야 전문가 가운데 그 말을 신뢰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동안 저(低)수가 정책에 학습된 의료계는 재정 확보 대책이 없는 보장성 강화에는 일찍부터 반대해왔다.

해결책은 명쾌하다. 재정지출을 위한 보험 재정을 확보하는 것이다. 방법은 국가가 예산 지원을 확대하든지 보험료를 인상하든지 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건강보험 원칙에는 진보·보수 어느 정부도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보험료 인상은 어느 정부도 떠맡기 싫어하는 악역일 것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처럼 보장성 강화에 관한 홍보 중 의료계에서 가장 큰 비난을 받는 것은 젊은 가수가 나와 “머리 MRI(자기공명영상) 촬영 돈 걱정 말라”고 노래하는 것이었다. 병원에 와서 머리 MRI 한 번 찍어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문의하는 환자가 부쩍 많아졌고, 실제 촬영 건수도 눈에 띄게 늘었다고 한다. 세계에서 MRI 보급률이 제일 높고 검사 건수도 가장 많은 나라를 지향할 것이 아니라면, 우리 건강보험에서 보장성 강화의 우선순위부터 정하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고가의 신개발 항암제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데 이어 최근에는 불치병으로 알았던 유전질환 척수성 근위축증을 치료하는 신약인 유전자 치료제 ‘스핀라자’의 건강보험 적용이 화제가 되고 있다. 스핀라자는 진단이 됐어도 결국은 일찍 사망하거나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연명해야 하는 환자를 살릴 획기적인 치료제다. 그러나 환자당 1회 1억원가량의 약제비가 필요한데, 이를 수십 회 반복 투여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건강보험제도가 없다면 큰 부자만 이런 새로운 치료의 혜택을 받아 생존하고, 가난하면 꼼짝없이 사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희귀 난치병 분야에서는 1인당 수십억원의 치료비가 드는 신약 개발이 점점 늘어날 것이다. 건강보험제도의 존재 이유 중 하나는 치료비가 많이 드는 희귀 난치병 환자도 비용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중요 화두도 에쿼티(equity), 즉 ‘형평성’의 문제다.

앞으로 쏟아져나올 고가의 신약을 감당할 수 있는 건강보험 재정대책, 다른 의료 혜택을 감안한 우선순위 등에 많은 사회적 고민과 합의가 필요할 것이다. 전 국민 건강보험을 시행하는 대표적 사례인 영국이 신약의 보험 적용에 신중하고, 다국적 제약사와 고가의 신약에 대한 약가 협상을 치열하게 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지금의 보장성 강화는 환자가 가고 싶어하는 유명한 병원에 대한 접근성을 담보하고 있다. 머리 MRI를 찍길 원하면, 환자가 원하는 3차 병원으로 갈 수 있다. 머리 MRI 촬영은 실상 홍보 노래처럼 신나는 일이 아니다. 조영제 주사를 맞고 원통 모양의 기계 안에 들어가 탕탕하는 소음을 들으며 20~30분 갇혀 있어야 한다. 가장 좋은 병원에서 제일 좋은 의료진의 진료를 받으려면 마냥 대기해야 한다. 급하게 진료를 받아야 할 중증 환자도 예외가 없다.

접근성만 높여 대형병원의 진료실 앞을 복잡하게 해서는 형평성을 보장할 수 없다. 필요한 수요만 걸러낼 절차가 필요하다. 경증 질환자도 3차 병원으로 몰리는 데다 가수요까지 있는 한국 의료 현실에서는 접근성을 제한하는 현명한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앞으로 쏟아져나올 천문학적 비용이 드는 희귀 난치성 질환 치료 신약의 혜택을 주는 문제도 그렇다. 여론에 휩쓸리지 않고 수요자와 의료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 치료 우선순위에 대해 합의하고, 그 절차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국민 건강보험은 진정한 형평성을 담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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