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해외 취업근로자에게 주택청약 우선권 주기도
이미 강화된 주택청약조건도 있는데…시대착오라는 지적도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 만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이를 부동산만 떼어놓고 보면 '소통' 보다는 '성토의 장'에 가깝다. 검색어에 '청약'이나 '아파트'를 넣어보면 청약의 부당함이나 애로사항, 살면서 느끼는 여러 불편사항들이 망라되어 있다. '청약'으로 검색된 게시물이 올해 올라온 것만도 1200건이 넘는다.
특히 문재인 정부들어 주택청약제도가 강화되면서 주택 청약 자격 조건이나 뜻하지 않게 부적격 당첨자가 되는 억울한 사연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올라왔다.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글을 올린 당사자의 얘기를 우연히 전해듣게 됐다. 아파트 1순위 당첨됐지만, 해외 체류 조건이 맞지 않아 문의와 민원을 계속 넣었다는 얘기였다. 건설사, 시행사, 지방자치단체, 국토부 등에 문의를 하고 관련서류를 뗀다고 백방으로 뛰어나니며 제출했다. 하지만 구제의 방법은 없었고 결국 청와대에 글을 올렸다는 것. 20만명이 청원에 동의해야 청와대의 답변이 나오니, 희망은 없었지만 그래도 억울함을 한번 호소하고 싶어서 글을 올렸다는 얘기였다.
지난해말 개정된 관련 법령 중 청약 자격조건에서 '해외 체류'는 꾸준히 문제가 제기됐다. 국토교통부는 "해외에서 30일 이상 동일한 장소에 거소를 둔 체류자의 경우에는 해당기간 동안 국내에 거주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입주자모집공고일 현재 최근 기간동안 계속해 해당지역에 거주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청약제도가 강화되면서 투기과열지구에서는 무주택 세대주만 1순위 통장을 사용할 수 있다. 보통 세대주가 가족 중 아버지인 점을 감안하면, 나머지 가족들은 무주택이지만 세대원이어서 1순위 청약이 불가능하다. 해외에서 열심히 고생하는 아버지 덕분에(?) 청약할 길이 사실상 막힌 셈이다.
때문에 올해초부터 분양되는 단지마다 해외체류 조건으로 인해 청약에서 탈락하는 경우들이 줄을 이었다. 사연도 가지각색이다. 업무차 해외체류 이유가 가장 많았고, 해외에서 한달 살기를 했거나, 해외 군복무 때문에 체류한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사정들은 국토교통부 민원은 물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올라왔다.
결국 국토교통부는 지난 24일 '해외거주 판단 기준이 없어 지속적으로 민원이 발생하고 있다'며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주요개정 사항을 발표했다. 내용은 '출국 후 계속하여 90일 이상 국외에 체류하거나 연간 6개월 이상 국외 체류한 경우에는 국내에 거주하지 않는 것으로 본다'는 것이었다. 1년도 되지 않아 또 청약제도가 변경됐다. 그것도 문제가 된 기간을 연장하는 내용이었다.
주택청약 제도의 빈번한 개정 문제는 여러차례 지적됐다. 하지만 '해외 체류'가 청약의 허들로 작용한 건 시대착오적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기업들의 해외 진출이 활발하고 해외여행이 자유롭고, 친지들이 교포로 있는 경우들도 많은 우리나라에서 유효한 제도인가라는 지적이다.
과거 1기 신도시를 분양할 때만 하더라도 '해외체류 근로자'는 오히려 특혜의 대상이었다. 1990년 9월 개정된 주택공급규칙에 따르면, 분당 일산 등 5개 신도시에서 신규 분양되는 주택 물량 중에서 '해외 취업 근로자들에게 우선 순위를 인정한다'는 부분이 있다. 당시의 답변은 이랬다. "노동부의 요청으로 해외취업 근로자의 사기를 감안해 동일순위 사이에서 경쟁이 있을 경우 이들에게 우선배정권을 주도록 했다"는 것이다. 해외에서 어렵게 외화를 벌어들이는 역군들에게 불이익 보다는 혜택을 주자는 내용이다.
이러한 배려는 이후의 청약제도에서도 계속됐다. 2000년대 들어 인터넷 주택청약이 도입되면서는 '이제는 해외에서도 청약이 가능하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어쩔 수 없이 해외에 있는 근로자에게 집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홍보였다. 인터넷 청약을 기본으로 할지라도 해외에서 체류중일 때에는 대리인을 통해 은행창구에서 청약이 가능했다.
한달 이상 해외에서 체류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신분이 보장된 사람이다. 가족을 무주택으로 남겨두고 홀로 해외에서 근무중이거나, 무주택인 부모님에게 부지런히 일하면서 돈을 부쳐줬을 근로자들이다. 그들은 낯선 타국의 기숙사나 숙소에서 가족들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산업의 역군이니 대통령도 해외 순방시 꼭 들르는 곳이 우리 기업들의 해외 현장 아니겠는가. 그들에게 우선권까지는 아니어도 자격박탈이나 부적격 당첨자라는 꼬리표를 안겨주는 건 시대와는 맞지 않아보인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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