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협도 최단기간 타결
새로운 노사 상생문화 선도
소모적인 '밀당' 없어
[ 김재후 기자 ] SK이노베이션 노사가 회사 창립 이래 최단기간에 단체협약 협상을 끝냈다. 교섭을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돼 합의를 이끌어냈다. 과도한 임금 인상과 정년 연장 등 무리한 요구를 내세운 채 ‘하투(夏鬪)’ 깃발을 들어 올릴 준비를 하고 있는 자동차·조선 업체들과는 딴판이다. 이 회사 노사는 올초 임금 협상을 30분 만에 타결짓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국내 기업들의 노사 관계가 대결적인 구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상생의 노사문화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과 이 회사 이정묵 노동조합 위원장 등은 29일 서울 서린동 SK빌딩에서 ‘2019년도 단체협약 조인식’을 했다.
이 회사 노사는 지난 2일 교섭을 시작한 지 3주 만에 잠정합의안을 마련했다. 이후 25일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77.56%의 찬성으로 가결시켰다. 노사가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은 지 28일 만에 단협 타결 조인식까지 연 것은 이 회사 창립 이래 처음이다. 그동안 SK이노베이션 노사 단협은 시작부터 타결까지 10주가량 걸렸다. 2010년엔 19주를 끌기도 했다.
SK이노베이션 노사가 합의한 단협에는 △육아휴직 10일 도입 △난임비용 일부 지원 △의료비 지원 가족 확대 △주택융자금 확대(5000만원→1억5000만원) 등이 들어있다. 회사 측이 직원 복지 혜택을 늘리자 노조도 사측이 제시한 사회공헌활동 확대에 합의했다. 노조는 △‘협력업체 공동 근로복지기금’ 조성(기본급 1% 기부) △직원 작업복 세탁 서비스 부문에 장애인 고용 확대 △사회공헌활동 적극 참여 등을 받아들였다. 이 회사 노사는 또 ‘행복협의회’(가칭)를 상설 조직으로 출범시켜 사회적 가치 창출을 논의하기로 했다.
SK이노베이션 직원들은 노사가 합의한 단체협약에 대해 “건강식 같다”는 의견을 내놨다. “자극적인 내용은 없지만 젊은 층이나 중년층 직원의 복지에 고루 신경을 썼다”는 평가다.
SK이노베이션이 창사 이후 가장 빨리 단협을 타결한 것은 ‘회사가 잘돼야 직원들도 잘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변화의 기류는 2017년 시작됐다. 이 회사 노사는 당시 기본급 인상률을 물가와 연동하기로 합의했다. 그해 사상 최대 실적을 냈지만 기본급 인상률(2018년분)은 1.9%로 합의했다. 올초엔 기본급을 1.5% 올리기로 하고 임금 협상을 30분 만에 끝냈다.
노조가 높지 않은 기본급 인상률을 수용한 것은 회사 측이 실적에 상응하는 대가(성과급)를 지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실적이 좋아지자 직원들에게 월 기본급의 850%에 해당하는 성과급을 줬다. 동종 업계 평균 성과급(500% 안팎)보다 훨씬 많다. 김 사장은 “사상 최단기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노사가 함께 만들어 온 신뢰와 상생, 존중과 배려의 문화가 결실을 맺었기 때문”이라며 “이런 노사문화가 향후 100년, 200년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핵심역량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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