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간섭 늘리는 법·제도 바꿔
필요한 사람은 맘껏 일하게 해야
박기성 <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 >
3개월간의 계도기간이 끝나고, 오는 10월부터 300인 이상 노선버스 회사에 주 52시간 근로제가 강행되면 장거리 시외버스는 중간에 기사를 교체해야 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하루 8시간을 초과하는 근로시간에 대해서는 통상임금의 50% 이상 가산임금을 지급해야 하며, 주 52시간을 초과해 근무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해 사용자와 근로자 대표의 서면합의에 따라 3개월 이내의 기간 동안 평균 주 52시간 범위에서 1주 최장 64시간까지 탄력적으로 근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특정 계절에만 팔리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공급하는 기업 또는 집중적으로 연구개발을 해 신제품을 출시하는 기업의 경우 3개월로는 부족하고, 6개월~1년 단위의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필요한데, 6월 국회에서는 단위기간 확대 방안을 처리하지 못했다.
주 68시간에서 주 52시간으로의 근로시간 단축이 지난해 7월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과 공공 부문에 시행됐고, 올 7월부터는 노선버스 회사에 적용되고 있으며, 2021년 7월부터는 5인 이상 모든 사업장으로 확대 시행된다. 장시간 근로를 해소하고 고용을 늘리기 위해 시행되고 있는 근로시간 단축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가?
2017년 6월부터 올 6월까지 2년 사이 근로자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2273시간에서 2148시간으로 125시간(5.5%) 단축됐다. 취업자 전체의 총근로시간은 연 25억5000만 시간(4.1%)이나 줄었다. 근로자 개인의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다른 근로자의 채용이 늘어 총노동투입량은 줄지 않아야 하는데, 이처럼 총노동투입량이 감소하고 설비투자가 위축되면서 경제가 뒷걸음질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근로기준법에 해당하는 미국의 공정근로기준법은 최저임금, 초과근로급여, 기록보관, 아동노동보호 외에 별 내용이 없다. 주 40시간을 초과하는 근로시간에 대해 50% 이상 가산임금을 지급하면 되고, 한국처럼 하루 12시간, 1주 52시간 등과 같은 최장 근로시간에 대한 제한은 없다. 그런데도 평균근로시간은 한국보다 훨씬 짧다.
1953년 5월 제정된 근로기준법은 공장 근로자만을 상정했던 것 같다.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흐르는 부품을 조립하는 근로자에게는, 시간에 비례해서 성과가 나오므로, 시간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고 초과근로시간에 대해서는 가산임금을 지급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무직 근로자는 업무를 자기 주도적으로 할 수 있고, 성과가 시간에 비례하지도 않으므로 초과근로시간에 대해 가산임금을 지급할 필요가 없다.
미국에서는 사무·관리·전문직은 초과근무를 해도 가산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화이트칼라 이그젬프션(white color exemption)’이 공정근로기준법에 명시돼 있어 이들은 ‘칼퇴근’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은 근로자들은 원하는 만큼 근무하고 시간급을 받는다. 그런데도 평균근로시간이 한국보다 짧다는 것은 근로시간 단축이 법적 강제가 아니라 근로자와 기업의 선택 결과로 이뤄지며, 그래야 총노동투입량의 감소 없이 근로시간 단축이 가능해진다는 것을 시사한다.
주 52시간 이상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정부가 일을 못 하도록 막는 것은 개인의 자유와 행복추구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소지가 있다. 한국에 화이트칼라 이그젬프션이 도입되면 평균근로시간이 7% 정도 줄어든다는 연구결과도 나와 있다. 이런 근본적인 처방 대신 법으로 근로시간 단축을 강제하고 그 부작용을 탄력적 근로시간제 등으로 완화하려 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필요한 업무를 위해 사무실에 남아 있는 직원의 컴퓨터 전원을 끄는 광경을 다른 나라에서도 볼 수 있을까.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정부는 가부장적 개입을 자제하고 경제주체 간 합의나 계약에 의해 노동시장이 돌아가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 일을 하려는 사람은 마음껏 일하게 하고, 고용을 하고자 하는 기업은 최대한 고용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확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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