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 투입해 소재 자립화 나섰지만
R&D 등 미흡…여전히 日 의존
[ 구은서 기자 ] 일본이 대(對)한국 수출규제를 강화한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세 가지 중 하나는 정부가 10년 전 이미 ‘자립화해야 할’ 핵심 소재로 선정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2009년 10대 핵심 소재를 2012년까지 자립화한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여전히 대부분을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 현재 양산체제를 갖춘 것은 10개 중 2개뿐이다.
1일 정부 및 업계에 따르면 2009년 당시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는 ‘소재산업 발전대책’을 수립하고 10대 핵심 소재를 선정했다. “만성적인 대일(對日) 무역적자의 주범은 부품·소재”라는 문제의식이 배경이었다. 당시에도 ‘늦었다’는 인식이 많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소재산업 발전대책은 새로운 얘기가 아니라 오래된 숙제”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부는 2012년까지 10대 핵심 소재의 자립화를 완료하고 2018년에는 세계 시장의 30% 이상을 점유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2018년까지 투입하기로 한 예산만 1조원에 달했다. 수송기기용 초경량 마그네슘 소재, 플렉시블 디스플레이용 플라스틱 기판 소재 등을 ‘세계시장을 선점할 10대 핵심 소재(WPM:world premier materials)’로 꼽았다. 일본이 지난달부터 한국으로의 수출을 통제하고 있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플렉시블 디스플레이용 플라스틱 기판 소재에 해당한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에 따르면 10대 소재 중 올해 8월 기준 양산 단계에 이른 것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와 고에너지 2차전지용 전극(음극재, 양극재) 소재 두 가지뿐이다. 그나마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여전히 일본 의존도가 높아 자립화를 이뤘다고 말하기 힘들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올 1~5월 총 1296만달러어치를 수입했는데 이 가운데 일본산이 93.7%에 달했다.
시제품을 포함해 10개 소재의 지난해 매출을 모두 더한 금액은 7200억원가량에 불과하다. 지난해 대일 소재·부품 부문 무역적자는 151억달러였다.
일본 정부가 2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면 핵심 부품·소재 국산화 대책을 내놓겠다는 게 산업부 등 정부의 계획이다. 관련 연구개발(R&D)에만 연간 1조원 이상 투입한다는 구상이다. 2009년 소재산업 발전대책을 설계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던 A씨는 “테스트베드 구축, R&D 기업에 대한 세제혜택 등 실효성 있는 대책이 담기지 않으면 세금으로 개발한 기술이 또다시 실험실 안에만 머무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소재·부품 국산화를 위해선 지속적인 장기 투자가 필요하다는 게 업계의 주문이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10대 핵심 소재가 아직도 자립화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은 일본산 소재를 대체하는 데 10년 이상 걸릴 것이란 또 다른 방증”이라고 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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