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내지도부·정책라인서 수정 요구
[ 김우섭 기자 ]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원내 지도부와 정책라인에서 부작용이 큰 경제정책을 수정·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곧 발표할 예정인 분양가상한제 보류와 300인 미만 사업장의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 연기 요구가 대표적이다. 특히 분양가상한제와 관련해선 “가격 통제 정책은 반시장적으로 오히려 서민들만 피해를 볼 것”이란 지적이 여권 내부에서 나온다.
최운열 민주당 제3정책조정위원장은 4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분양가상한제 도입은 부동산시장의 정상 작동을 방해해 기존 주택 가격만 올릴 것”이라며 “우리 정부가 내놓은 정책 중 가장 큰 악수(惡手)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르면 이번주 민간택지 아파트 분양가상한제 도입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민주당 지도부와 국토위원회 소속 의원들도 분양가상한제 도입으로 주택 공급이 줄어 중·장기적으론 부동산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고 우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내 지도부에선 주 52시간 근로제 보완 요구가 나왔다. 이원욱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내년 1월 1일부터 도입 예정인 300인 미만 사업장의 주 52시간 근로제를 1년 이상 유예하는 법안을 조만간 낼 것”이라며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산업계에 숨통을 틔워주기 위한 취지”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개인적 소신에 따른 법안 발의라고 했지만 여권 지도부가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 연기 법안을 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민주당 "단합이 최우선"→"할 말은 해야" 기류변화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집권 후 “단합이 최우선”이라는 기치 아래 한목소리를 내자는 분위기가 강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당·정·청이 엇박자를 내며 지지층이 등을 돌린 열린우리당 시절의 경험 때문이다. 이견은 되도록 비공개 회의에서 표출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경제 정책과 관련해 자기 목소리를 내는 의원이 늘고 있다. 내년 국회의원 총선거를 8개월여 앞두고 민심에 반하는 정책엔 “할 말은 해야 한다”는 기류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수도권 지역의 한 국회의원은 “경제 정책은 ‘현실’과 ‘정책적 선의’를 구분해야 한다”며 “민심을 가장 가까이에서 듣는 국회의원의 목소리가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분양가 상한제, 선의만으론 곤란”
최근 여권 지도부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선 민간택지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 도입 문제를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여권의 대표 소신파 중 한 명인 최운열 민주당 제3정책조정위원장은 “분양가 상한제가 부동산 가격을 잡기보다는 부작용만 초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 위원장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을 거친 대표적 거시경제·금융 전문가다.
최 위원장은 “아무리 좋은 정책도 시장을 이기려고 하는 순간 의도대로 될 수 없다”고 꼬집었다. 과거 정부가 주택임대차 계약 최단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했을 때 사례로 들며 “2년치 전셋값 인상을 한꺼번에 추진하는 바람에 세입자들이 커다란 고통을 겪었다”며 “정책은 선의로만 볼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정부가 시장 가격 통제 문제를 너무 쉽게 본다는 이미지를 심어줘서도 안 된다고 설명했다. 최 위원장은 “단기적으로는 가격이 안정될 수 있지만 이후엔 주택 공급이 줄어드는 등 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아 서민이 피해를 볼 것”이라며 “분양가 상한제를 도입한다고 해서 이미 올라버린 기존 아파트 가격이 떨어지지도 않는다”고 했다.
당내 의원들의 이견도 적지 않다. 한 원내 핵심 의원은 “시장이 크게 왜곡되고, 가격 상승이란 부작용만 나타날 것”이라며 “다만 국토부가 워낙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고 입법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공개 발언은 자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최근 여당 지도부와 국회 국토위 의원들을 찾아 분양가 상한제의 필요성과 지지를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택법 시행령의 상한제 적용 요건을 고치면 돼 입법 사항은 아니지만 워낙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커 여권의 동의와 지지는 필수적이다. 한 국토위 관계자는 “주무 장관이 필요성을 강하게 역설하는 상황에서 상임위 차원에서 반대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주 52시간제 보완 안하면 산업계 낭패”
이원욱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주 52시간 근로제를 보완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수석부대표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300인 미만 사업장의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 시기를 1년 이상 늦추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곧 발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개정안은 ‘종업원 300인 미만’ 사업장의 제도 적용 시기를 최소한 1년 이상 더 유예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현재는 ‘5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과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은 각각 2020년 1월 1일과 2021년 7월 1일부터 주 52시간 근로제를 도입하도록 하고 있다. 이 의원의 법안은 △20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은 도입 시기를 2021년 1월 1일 △100인 이상 200인 미만은 2022년 1월 1일 △50인 이상 100인 미만은 2023년 1월 1일 △5인 이상 50인 미만은 2024년 1월 1일로 늦추는 내용을 담을 예정이다. 이 수석부대표는 “현장에서 기업인을 만나 보면 주 52시간 근로제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며 “제도 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산업계의 연착륙을 돕는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최 위원장은 고소득 전문직을 주 52시간 근로제에서 제외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제도에서 제외되는 직종의 기준을 연봉·분야 등으로 나눠 명시하는 내용을 담는다는 것이다. 최 위원장은 “고소득 전문직의 경우 자발적인 초과 노동이 많기 때문에 이 제도를 굳이 적용할 필요가 없다”며 “연봉 1억원 이상의 고소득 전문직에 근로시간 제한 제도를 적용하지 않는 해외 사례를 참고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두 의원은 민주당 당론이 아니라 개인 소신에 따른 법안 발의라고 설명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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