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동남아에 반도체소재 수출 때
한번 허가 받으면 3년간 '프리패스'
[ 서민준 기자 ] 세코 히로시게 일본 경제산업상은 지난달 고순도 불화수소 등 반도체 핵심소재 3종에 대한 수출 규제를 단행하면서 “한국을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소속 국가와 동등하게 취급하겠다는 것인데 무슨 문제가 있나 싶다”고 말했다. 그동안 한국에 제공하던 특별대우를 안 하겠다는 것일 뿐 아세안이나 중국보다 차별하는 건 아니라는 주장이다. 일본 정부는 최근까지도 이런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사실이 아니었다. 일본 경제산업성의 전략물자 허가 제도 운용 현황을 확인한 결과 일본 기업이 중국과 아세안 국가에 반도체 핵심소재 3종을 수출할 때 ‘특별일반포괄허가’를 이용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일반포괄허가는 한 번 허가받으면 3년간 자유롭게 수출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다만 특별일반포괄허가는 일본의 거래 기업이 ‘자율준수무역거래자(CP)’여야 한다는 요건이 붙는다. 무역 법규를 잘 지킨다고 일본 정부로부터 인증받은 기업이다. 이런 요건 없이 3년간 허가를 면제하는 ‘일반포괄허가’보다는 까다롭다고 할 수 있다. 일반포괄허가는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국가)에 수출할 때 적용된다.
반면 한국은 이들 3개 품목에 ‘개별허가’가 적용된다. 일본 기업이 한국에 수출할 때 건건이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일반포괄허가는 물론 그보다 한 단계 낮은 특별일반포괄허가조차 이용할 수 없다. 한국을 일반적인 나라와 동등하게 취급하겠다는 일본 정부의 말과 달리 중국, 아세안보다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 차별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한국을 차별하는 이유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전략물자 수출 통제 체계는 산업 물자를 대량살상무기 등 군용으로 쓰거나 북한, 이란 등 위험 지역으로 반출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특정 국가에 대한 통제를 강화할 때는 이 나라가 산업 물자를 군사 용도로 전용하고 있다는 등의 구체적인 증거가 있어야 한다. 일본은 이런 증거는 제시하지 않은 채 막연히 한국의 수출 관리 체계가 불안하다는 주장만 반복하고 있다.
일본은 지난 2일 반도체 핵심소재 3종 규제에서 나아가 한국을 아예 화이트리스트에서 빼 버렸다. 이 조치로 1120개에 이르는 모든 전략 물자가 개별허가로 바뀌는 걸까. 그렇지는 않다. 우선 1120개 중 무기류 등 ‘민감 품목’ 263개와 ‘비민감 품목’ 중 특별조치를 내린 반도체 핵심소재 3종은 지금도 개별허가 대상이다. 나머지 854개 품목이 문제인데 화이트리스트 제외 후에도 특별일반포괄허가는 이용할 수 있다. 다만 일본의 거래 기업이 CP여야 한다는 점이 문제다. 일본 경제산업성에 따르면 CP 인증을 받은 일본 기업은 약 1300개다.
정부 관계자는 “일본 전체 기업이 300만여 개에 이르고, 이 중 수출 기업도 수십만 개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CP 기업은 굉장히 적다”고 말했다. 일본 거래처가 소수의 CP 기업이라는 ‘운’이 따르지 않으면 까다로운 개별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일본이 향후 반도체 핵심소재 3종에 했듯이 특정 품목에 대해선 특별일반포괄허가조차 이용하지 못하게 규제할 가능성도 있다. 추가 규제 대상으로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및 장비, 공작기계와 탄소섬유 등이 거론된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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