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경제위기 복합 파고'가 몰려오고 있다

입력 2019-08-06 17:57  

한·일 갈등, 미·중 통화전쟁…실물·안보·금융 모두 휘청
작전 짜야 할 정부가 '응원단장' 역할 치중해서는 곤란
국정역량 '포장' 아닌 '입증'하고 뼈를 깎는 대책 내놔야



한마디로 ‘시계(視界) 제로’다. 금융시장이 가장 싫어한다는 불확실성이란 안개가 자욱하다. 일본과의 갈등이 장기화 조짐인데,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전격 지정해 무역전쟁이 통화전쟁으로 확전될 판이다. 그 여파로 세계 증시가 심하게 요동치고 있다. 시가총액 50조원이 증발한 ‘블랙먼데이(검은 월요일)’에 이어, 어제도 코스피는 장중 한때 1900선이 무너졌다. 전날 17원 뛴 원·달러 환율은 개장 초 1220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다. 경제·안보 위기에 금융·외환 불안까지 번진 ‘복합위기’를 어디서부터 풀지 막막하다. 금융시장 불안은 우리 경제의 처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코스닥은 이틀새 10% 폭락했다. 오늘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두렵다.

실물에서 금융으로 전이된 위기 징후들은 정부의 위기 대처능력에 대해 의구심을 증폭시킨다. 주가가 폭락하는데도 금융당국은 “문제 없다”고 큰소리쳤고, 청와대에선 “가짜뉴스에 가까운 오보가 나올 때 웃는 사람은 아베 정부”라며 시장 우려를 폄하했다. 정부가 중증질환을 오진한 채 ‘립서비스’ 처방으로 병을 더 키운다는 비판이 나온다. 게다가 “일본에 지지 않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이 내놓은 해법이 ‘남북한 평화경제’라는 데 시장 실망감은 더욱 커졌다. 20년 전 외환위기, 10년 전 금융위기를 경험한 국민들이 무엇이 위기 징후인지 너무도 잘 안다는 사실부터 직시해야 한다.

한·일 양국이 폭주기관차처럼 마주 보고 달리는 판에 중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돼 대중국 수출까지 차질을 빚게 생겼다. 일본자금 이탈을 걱정하지만 ‘한국의 피해가 가장 크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다른 해외자금의 엑소더스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그런 최악의 상황이 되면 외환보유액 4000억달러도 그리 많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이, 작금의 위기는 아무리 가리려고 해도 가려지지 않는다. 얼마 전까지 정부는 ‘펀더멘털이 좋다’고 했지만 실물경제는 이미 위기국면이다. 여기에 한·일 및 미·중 갈등이 엎친 데 덮친 격이어서 외환위기 악몽을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국민들은 태풍이 몰려오는 것을 감지하는데 정부가 ‘문제없다’고 하면 할수록 시장 신뢰만 잃을 뿐이다.

설상가상으로 한·일 갈등을 악화시킬 ‘지뢰밭’이 즐비하다. 오는 15일 광복절, 24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연장 여부 결정, 28일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국가) 제외 시행 등이 모두 그렇다. 이를 ‘제2 독립운동’ 운운하며 감정적으로 대처할 경우 사태는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수도 있다.

국민들은 일본의 치졸한 보복에 분노하지만, 동시에 정부가 치열하되 냉정하게 대처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복합위기를 맞아 ‘팀 코리아’의 전략을 짜는 감독이어야 할 정부가 반일(反日) 불매운동의 ‘응원단장’을 자처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때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이 위기를 타개할 실효성 있고 설득력 있는 대처방안을 내놓는 것이다. 규제를 찔끔 풀고, 과거 대책을 재탕하는 식으로는 어림도 없다. 외환위기 때 혹독한 구조조정으로, 금융위기 때 미국 일본과의 통화스와프로 위기를 극복했던 수준의 실질적인 대책이 절실하다. 뼈를 깎는 반성과 파격적인 정책전환 없이는 금융시장을 안심시킬 수 없다. 국정운영은 ‘포장’하는 게 아니라 ‘입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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