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대화해도 美와 할 것…靑은 새벽잠 제대로 자기 글렀다"

입력 2019-08-11 17:55   수정 2019-08-12 00:39

北, 트럼프엔 친서…南엔 미사일

"미국도 우리 자위권 인정했는데
겁먹은 개가 더 짖어" 靑에 막말



[ 임락근 기자 ]
북한이 지난 10일 함경남도 함흥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단거리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 두 발을 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부터 친서를 받았다고 밝힌 지 8시간여 만이다. 미국과는 거리를 좁히면서 한국에는 연일 압박 수위를 높이는 모양새다.

북한은 미사일 발사 이튿날인 11일 권정근 미국담당국장 명의의 외무성 담화를 발표하고 한국을 맹비난했다. 외무성은 담화문에서 “미국 대통령까지 아주 작은 미사일 시험이라고 하면서 주권국가로서 우리의 자위권을 인정했는데 남조선 당국이 뭐길래 군사적 긴장 격화니, 중단 촉구니 하며 횡설수설하고 있는가”라고 협박했다. 그러면서 “군사연습을 아예 걷어치우든지, 그럴싸한 변명이나 해명이라도 하기 전에는 북남 사이의 접촉 자체가 어렵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거론하진 않았지만 청와대를 거명하며 “겁먹은 개가 더 요란스럽게 짖어댄다” “새벽잠을 제대로 자긴 글렀다”고 노골적인 막말을 퍼부었다.

트럼프 대통령도 김정은의 친서 내용을 공개하며 기자들에게 한·미 연합훈련에 대해 “터무니없고, 돈이 많이 든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또 “너무 머지않은 미래에 김정은을 보기 원한다”며 3차 미·북 정상회담 가능성을 시사했다. 청와대는 10일 긴급 관계장관 회의를 열어 북한에 도발 중단을 촉구했다.


원색적 막말 쏟아낸 북한…무대응 일관하는 청와대

북한이 북핵 문제와 관련해 한국을 통하지 않겠다는 ‘새로운 통미봉남(通美封南: 한국을 배제한 채 미국과 협상)’ 전략을 분명히 했다. 미국과 직접 대화하고 담판을 짓겠다는 것이다. 한국을 향해선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문재인 정부의 중재외교가 북한의 노골적인 ‘코리안 패싱’에 맞닥뜨리면서 남북한 간 대화 단절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정부가 북한과의 대화에만 매달리면서 사면초가를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북, 노골적인 막말과 조롱

권정근 북한 외무성 미국담당국장은 11일 담화에서 “앞으로 대화를 향한 좋은 기류가 생겨 우리가 대화에 나간다고 해도 철저히 이러한 대화는 조·미 사이에 열리는 것이지 북·남 대화는 아니라는 것을 똑바로 알아두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을 향해 “바보는 클수록 더 큰 바보가 된다고 했는데 바로 남조선 당국자들을 가리켜 하는 말”이라고 노골적인 조롱을 퍼부었다.

청와대와 국방부 장관을 언급한 부분은 원색적이었다. 권 국장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우리의 정상적인 상용무기 현대화 조치를 두고 청와대가 전시도 아닌 때에 ‘긴급관계장관회의’를 소집한다 어쩐다 하며 복닥소동을 피워댔다”고 했다. 이어 “지난번에 진행된 우리 군대의 위력시위 사격을 놓고 사거리 하나 제대로 판정 못 해 쩔쩔 매 만사람의 웃음거리가 된 데서 교훈을 찾는 대신 저들이 삐칠 일도 아닌데 쫄딱 나서서 새벽잠까지 설쳐대며 허우적거리는 꼴이 참으로 가관”이라고 비난했다.

청와대를 향해선 “청와대의 작태가 남조선 국민들의 눈에는 안보를 제대로 챙기려는 주인으로 비쳐질지는 몰라도 우리 눈에는 겁먹은 개가 더 요란스럽게 짖어대는 것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다”고까지 했다. “그렇게도 안보를 잘 챙기는 청와대이니 새벽잠을 제대로 자기는 글렀다”는 비아냥거림도 빠뜨리지 않았다.

지난해 4·27 판문점회담에서 김정은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우리 (미사일 도발) 때문에 NSC(국가안전보장회의)에 참석하시느라 새벽잠을 많이 설쳤다는데, 새벽잠 설치지 않도록 제가 확인하겠다”고 한 호언장담이 무색한 내용이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에 대해선 실명을 거론하며 비난했다. 권 국장은 “정경두 같은 웃기는 것을 내세워 체면이라도 좀 세워보려고 허튼 망발을 늘어놓는다면 기름으로 붙는 불을 꺼보려는 어리석은 행위가 될 것”이라고 했다.

靑, 비난에도 “대화 분위기 훼손 아냐”

이번 담화는 북한의 ‘통미봉남’ 의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청와대가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한 대응책으로 남북 경협을 통한 평화경제를 내걸었지만, 정작 북한으로부터 노골적인 무시를 당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한이 여태까지 한국을 비난한 적은 있었어도 최근처럼 노골적으로 무시한 적은 없었다”는 우려가 나온다.

북한을 향한 정부의 저자세가 이 같은 구도를 만든 것이란 비판도 있다. 남북 대화 국면이 깨지는 것을 우려한 나머지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채찍’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란 얘기다. 청와대는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도발에도 비핵화 대화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을 경계하며 대응 수위를 조절했다. 이번 미사일 도발에도 “특이한 대남 군사 동향은 없다”며 상황 관리에 주력하는 분위기다. 청와대는 이날 문 대통령이 빠진 관계장관회의를 연 뒤 “심각한 대화 분위기를 훼손한 건 아니다”고 비관론을 경계했다.

남북 사이엔 북핵 문제는 물론 평화 정착을 위한 협력 역시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지난 2월 하노이 2차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남북 간에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소장회의가 6개월째 열리지 않고 있다. 남북 간 현안과 관련한 협의 제안에도 북측은 사실상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최근에는 북한이 한·미 군사훈련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며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한 정부의 쌀 지원에 돌연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공여국’인 한국 정부가 ‘수혜국’인 북한의 공식 수령 의사를 기다리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국방부 역시 남북공동유해발굴, 공동어로구역 설정 등 9·19 군사합의를 이행해나가지 못하고 있다. 국방부와 통일부는 이번 미사일 도발과 북한의 외무성 담화에도 별다른 입장조차 내지 않았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센터장은 “일본한테는 당장 전쟁이라도 해야 할 것처럼 강경하면서 남한 전역을 사정권에 두는 미사일을 쏘고 욕설에 가까운 비난을 퍼붓는 북한에는 한없이 관대한 모순적 상황”이라며 “남북 대화에 얽매이면서 생겨난 기현상”이라고 꼬집었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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