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의 이유] 상담원 A는 당신의 막말을 기억한다

입력 2019-08-14 15:18   수정 2019-08-14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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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노동자 10명 중 4명은 고객에게 폭언을 들어본 경험이 있다는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조사결과가 있습니다. 감정노동이 그만큼 힘들다는 점을 보여주는데요. 그 중에서도 전화 상담원의 고충은 더 크다고 합니다. 사무금융연맹은 이들이 한 달 평균 14.81회 폭언을 듣고, 성희롱도 1.16회 당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퇴사의 이유 7화 사연자인 이모 씨도 한 홈쇼핑 업체 전화 상담원으로 근무했습니다. 그는 “욕설부터 인신공격, 부모님 욕까지 안 들어본 욕이 없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소비자들이 화가 난 상태로 전화를 걸기 때문에 애꿎은 상담원에게 그 화를 푼다는 게 그의 설명입니다.

이씨는 상담원 일을 그만둔 지금도 상처가 되는 경험이 있다고 했습니다. 어느 중년 여성이 “홈쇼핑 앱이 설치가 안된다”며 문의 전화를 걸어왔는데요. 설치 방법을 차근차근히 설명해도 그 여성은 “설치가 안된다”며 짜증만 내더랍니다. 급기야는 “네가 설명을 거지같이 하니까 앱이 안깔린다”고 소리를 지르더니 “그 정도 머리 밖에 안 되니 네가 그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라고 인신공격까지 해왔습니다.

2017년부터 전화 상담원이 상담 도중 폭언을 들을 경우 먼저 전화를 끊을 수 있도록 대부분 회사의 규정이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막말을 들었다고 상담을 무작정 그만 둘 수는 없는 게 현실입니다. 이씨는 “경고 안내를 세 번 한 뒤에서야 비로소 전화를 끊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첫 번째 경고를 했는데도 중년여성은 폭언을 멈추지 않았다”며 “‘네가 몇 살인지는 모르겠지만 너같은 자식을 둔 네 부모님이 걱정 많으시겠다’는 말까지 했다”고 상황을 떠올렸습니다.

심지어 이런 몰상식한 막말을 퍼부어댄 소비자의 직업은 어느 대학 교수였다고 합니다. 회원가입 정보에 ㄱ대학교 교수라고 기입했다고 하네요. 앱이 설치되지 않았던 이유는 핸드폰 용량이 부족해서였다고 합니다. 잘 알아보지도 않고 상담원만 비난했던 이 소비자는 사과 한 마디 없이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밖에도 “홈쇼핑에서 산 음식을 먹고 부부싸움을 했으니 보상해달라”던 주부, “다이어트 보조제를 먹어도 살이 안빠진다”며 욕설을 퍼붓던 소비자 등 막말 사례는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매일 이들을 상대하다보니 이씨에게도 우울증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나 뿐만 아니라 상담원 중에서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말합니다.

우울증이 산업재해로 인정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그런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기대가 없다”고 답했습니다. 이씨는 “관리자가 왕 수준으로 상담원 위에서 군림한다”며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허락을 받아야 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팀 실적을 채우기 위해 동시에 두 명 이상 화장실에 갈 수 없고, 가더라도 10분 안에 자리로 돌아오도록 지시했다는 겁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화장실을 참아가며 일하다가 방광염이 온 동료도 있었다는 게 이씨의 설명입니다.

사표로 마음대로 내지 못하게 했다는 황당한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이씨는 “한 번은 갑자기 팀원 모두를 다른 팀으로 이동발령한다고 해서 이에 반발한 직원 7명이 사직 의사를 밝혔다”며 “하지만 팀장이 ‘그런 사유로 그만 두는 것은 받지 않는다’고 못을 박았다”고 말했습니다. 헌법에서 보장한 직업 선택의 자유를 이 사업장에서는 인정해주지 않았던 겁니다.

결국 이씨는 천식이 생기고 나서야 회사를 그만 둘 수 있었습니다. 그는 “닭장처럼 파티션을 처놓고 하루종일 먼지나는 컴퓨터 앞에서 상담 하다보니 천식이 온 것 같다”며 “팀장에게 의사 소견서를 보여주자 곧바로 퇴직처리해줬다”고 얘기했습니다.

소비자 갑질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뒤 개선책이 나오고 있지만, 사내 갑질은 여전하다는 게 이씨의 설명입니다. 그는 “관리자들이 상담원에게 부당하게 실적을 압박하는 관행이 고쳐져야 한다”며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은 아직도 상담원들에게는 먼 나라 얘기”라고 말했습니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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