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현대미술관서 국내 첫 전시
[ 은정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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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분명 콸콸 빗줄기가 쏟아졌다. 무엇인가 줄기차게 바닥을 때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그런데 우산도, 우비도 없이 빗속을 계속 걸었는데 몸은 젖지 않았다. 부산현대미술관에 14일 모습을 드러낸 ‘레인 룸(rain room)’ 공간 속에서 펼쳐진 ‘마법’이었다.
올 하반기 국내 전시 기대작 중 하나인 뉴미디어 설치 작품 전시 ‘레인 룸’이 이날 시작됐다. 이 작품은 디지털기술과 인간의 서정적 감성을 결합한 작품들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작가그룹 랜덤인터내셔널이 2012년 영국 런던 바비칸센터에서 처음 공개했다. 이후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LACMA), 중국 상하이 유즈미술관 등을 거치며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부산현대미술관 1층 100㎡ 규모의 공간에 설치된 ‘레인 룸’은 그야말로 마술 같은 광경이었다. 디지털 기술로 뿌려지는 빗속을 걷자 빗소리라는 청각적 이미지와 조명을 이용한 빗줄기의 시각적 이미지가 절묘하게 결합해 몽환적이면서도 서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공간에 설치된 센서가 빗속에서 인체가 움직일 때마다 떨어지는 물방울을 제어해 관람객이 젖지 않고 빗속 풍경을 체험할 수 있다. 5m 높이의 벽면 양쪽에는 카메라가 4개씩 설치됐다. 이 카메라들이 사람의 움직임을 감지해 컴퓨터로 실시간 전송하고, 컴퓨터가 이 데이터를 토대로 1582개의 천장 노즐을 쉼 없이 여닫는다. 1분마다 500L씩 천장에서 쏟아지는 물을 피할 수 있는 비밀이다.
미술관에서 만난 랜덤인터내셔널 소속 작가인 플로리안 오트크라스는 많은 이들이 ‘레인 룸’에 열광하는 이유로 ‘고요한 재미’를 들었다. 그는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선 폭탄이 투하되듯 정보가 쏟아지지만 실질적으로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며 “‘레인 룸’은 그런 세상에서 잠깐 빠져나와 자신의 경험과 반응, 감각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순간을 만들어 준다”고 설명했다. 이어 “주위의 인위적 환경을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프로젝트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며 “관객들이 어떤 선입견도 가지지 않고 빗속에 들어가 다양한 생각을 해봤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랜덤인터내셔널은 이번 전시에서 50만 개 이상의 오브제 움직임을 소재로 한 비디오 설치 작업 ‘알고리드믹 스왐 스터디’도 선보였다. 전시는 내년 1월 27일까지.
부산=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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