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능 강화, 선행투자 늘려야
김용열 < 홍익대 글로벌경영학과 교수 >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소재·부품산업의 경쟁력 향상이 시급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수많은 방안과 대책이 논의되고 있지만 금융과 대기업의 역할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소재·부품산업은 대부분 중견·중소기업이 담당하고 있다. 기술력이 높은 기업이 적지 않겠지만 자금·판로 측면의 어려움이 공통적으로 관찰된다. 초기 기술개발에는 성공했지만 실험장비나 설비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 못해 사업을 확장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유망 중견·중소기업을 골라 자금을 빌려주고 성장하도록 뒷받침하는 대가로 이익을 챙기는 것은 금융회사 고유의 역할이다. 이른바 ‘금융의 선별기능’이다. 그런데 한국의 금융회사는 이런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오히려 ‘비 오는데 우산 뺏는 일만 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게 사실이다. 금융사가 중견·중소기업에 대한 융자나 투자에서 전문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오랜 관치금융의 결과이자 폐해라고 할 수 있다. 금융사가 예상되는 리스크를 그저 회피하는 데 급급하지 않고, 자율심사기능을 통해 적절히 대응하거나 능동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체질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금융의 이런 능력은 4차 산업혁명의 흐름을 타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신기술이나 유망 아이템에 강점을 갖는 중견·중소기업을 알아내 선행투자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미국, 독일이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일본의 경우는 좀 다르다. 금융 부문이 취약한 것은 한국과 비슷하다. 그런데 여유자금이 풍부한 대기업이 중견·중소기업 투자에 적극적이다. 유망 중견·중소기업이나 신규 벤처에 대기업의 지분참여가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최근 소개된 ‘손정의식(式)’ 투자행태를 보면 알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대기업이 소수지분을 갖는다는 것이다. 굳이 계열사로 만들지 않고 네트워크형 관계투자를 하는 데 그친다. 그것이 서로를 위해 좋다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한국은 어떤가. 금융의 선별기능은 미약한 가운데, 대기업의 중견·중소기업 지분참여는 엄격하게 제한되거나 규제받고 있다. 소재·부품산업 육성이나 장기적인 4차 산업혁명 대응은 대부분 정부의 직접지원에 의존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정부가 언제까지 이 역할을 떠맡을 수는 없다. 정부, 금융, 대기업이 삼각 협력해야 소재·부품 분야의 ‘히든챔피언’이 탄생할 수 있다. 무엇보다 금융의 선별기능을 강화해 금융을 통한 간접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대기업의 투자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대기업이 일정 지분을 보유해 계열사로 편입하는 대신 소수지분만 갖고 독립성을 보장하는 방식이 투자한 중견·중소기업의 이익률과 성장성을 높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대기업이 단순 지분참여를 통한 협력적 네트워크를 운영하는 것은 패러다임의 전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방식은 ‘조직 외부화’에 해당한다. 출자하되 지배하지 않는 방식이다.
판로 확보 역시 중요한데, 이 부분에서도 대기업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구매담당들은 의사결정에 따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는 신생 벤처가 초기 판로를 뚫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유 중 하나다. 구매의사 결정에서 최고경영자(CEO)의 역할이 강조되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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