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비율 176%로 치솟아
[ 조재길/구은서 기자 ]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국전력이 올 상반기 1조원에 가까운 적자를 냈다. 정부의 탈(脫)원전 기조에 따라 값싼 원자력발전을 줄인 데다 미세먼지 대응 등 사회적 기여 비용이 늘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전은 14일 올 상반기 연결재무제표 기준으로 9285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고 공시했다. 상반기 기준으로 2012년(-2조3020억원) 후 7년 만의 최악 실적이다. 2012년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국내 다수 원자력발전소가 가동을 일시 중지했던 때다.
한전의 부채비율도 급증세다. 2016년 말 143.4%이던 부채비율은 작년 말 160.6%로 상승한 데 이어 올 상반기 176.1%로 치솟았다. 김갑순 한전 재무처장은 “미세먼지 감축을 위해 석탄발전소 가동률을 낮춘 데다 대체 발전원인 액화천연가스(LNG)의 도입 가격이 높아 실적이 나빠졌다”고 설명했다.
여전히 낮은 원전 이용률도 경영 실적에 악영향을 끼쳤다. 작년 65.9%까지 떨어진 원전 이용률이 올 상반기 79.3%로 올라갔지만 예년 평균(80~90%)에는 미치지 못했다. 작년 원자력발전의 평균 구입단가는 ㎾h당 62.05원으로, LNG(122.45원)와 재생에너지(168.64원)보다 훨씬 낮았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완화, 한전공대 설립 등 경영 외적인 부담이 지나치게 많다”며 “적자가 누적되면 전기요금을 올리거나 혈세를 투입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3대 외풍'에 시달리는 한전…"혈세 투입·전기료 인상 불가피할 것"
한국전력은 지난 2분기 연결재무제표 기준 2986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정부가 탈(脫)원전을 본격화한 2017년 4분기(-1294억원) 이후 분기 흑자를 낸 건 작년 3분기(1조3952억원)뿐이다. 정부가 정책 방향을 수정하지 않는 한 한전뿐만 아니라 한국수력원자력 한국동서발전 등 전력·발전 공기업의 동반 부실을 피할 수 없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한전을 포함한 공기업 부실은 정부 재정 악화로 직결된다는 점에서 시한폭탄과 같다”고 말했다.
바람 잘 날 없는 한전
한전 실적 악화의 요인은 복합적이다. 정부와 한전은 “전기 판매수익은 작년과 비슷하지만 미세먼지 대응을 위한 석탄발전 감축과 여전히 높은 국제 연료 가격 등이 영업적자의 직접적인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올 2분기 기준 석탄 이용률은 58.6%로, 1년 전(65.4%)보다 6.8%포인트 하락했다. 정부가 미세먼지 발생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석탄화력발전의 일부 발전소 가동을 잠정 중단하도록 지시하면서 비교적 값싼 석탄발전을 충분히 활용할 수 없었다는 의미다. 김갑순 한전 재무처장은 “석탄 이용률 하락에 따른 2분기 추정 손실액은 약 2000억원”이라고 설명했다.
원전의 대체 발전원인 액화천연가스(LNG)의 국제 가격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점도 적자 배경 중 하나다. 김 처장은 “발전용 LNG 공급단가는 국제 현물 시세와 평균 5개월 시차가 발생하는데 작년 말 치솟았던 LNG 국제 가격이 올 상반기 실적에 반영됐다”며 “LNG 가격이 최근 소폭 하락했지만 여전히 부담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전은 정부의 각종 ‘사회적 기여’ 압력도 외면할 수 없는 처지다. 적자 상태에서도 전남 나주시에 한전공대 설립을 추진하는 게 대표적 사례다. 한전공대 설립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한전 관계자는 “내년 상반기까지 우선 600억원을 기부금 형태로 출연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전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물론 신규 채용 인력도 꾸준히 늘려왔다. 공공분야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는 정부 방침에 부응하기 위해서다. 이 회사가 신규 채용한 인력은 2016년 1412명, 2017년 1574명이었는데 2080억원 적자를 낸 작년엔 채용 규모를 1786명으로 오히려 확대했다. 올 상반기에도 361명을 새로 뽑았다. 당정이 여름철 전기요금 누진제 완화에 합의하면서 한전은 올해부터 매년 2000억~3000억원의 추가 비용도 부담하게 됐다.
적자 계속되면 결국 국민 부담
한전과 같은 대형 공기업의 적자가 누적되면 국민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정부 세입에 직접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2017년 정부에 2313억원을 배당했던 한전은 작년 실적이 추락하자 한 푼도 배당하지 못했다. 그만큼 복지 교육 국방 등에 쓸 예산이 줄었다는 의미다.
자칫 혈세로 메워줘야 할 가능성도 있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까지 뛰었던 2008년 정부는 추가경정예산을 긴급 투입해 한전 손실을 보전해줬다. 당시 투입한 세금은 6680억원이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공공기관의 실적 악화는 국가 재정에 치명적인 부담”이라며 “영업손실이 커지고 부채가 늘면 지금의 청년 세대에 고스란히 빚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내년 4월 총선 이후엔 전기요금 인상 논의가 본격화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한전이 감당할 만한 수준의 적자를 넘어설 수 있어서다. 한전 이사회는 지난달 1일 공시에서 “필수사용량 보장공제의 폐지 또는 축소, 원가 이하 전력요금체계의 현실화 등을 내년 상반기까지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필수사용량 보장공제는 전력 사용량이 월 200㎾h 이하인 저소비층에 월 4000원의 요금을 일률적으로 깎아주는 제도다. 이 제도 폐지는 사실상 전기요금 인상 방안이다. 이와 관련,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한전 적자가 국민 부담으로 돌아오지 않도록 관리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조재길/구은서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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