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집행 통일성 떨어져 불만 야기"
[ 이인혁 기자 ] 충남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A씨는 지난 2월 미성년자에게 술을 팔다 적발돼 영업정지 2개월 처분을 받았다. A씨는 고의가 아니었던 점 등을 들어 영업정지는 과도하다며 이를 취소해 달라는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충남 행정심판위원회는 A씨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영업정지 기간을 1개월로 줄여줬다. B씨는 지난해 경남에서 청소년들을 성인으로 착각해 주류를 판매했다가 영업정지 2개월 처분을 받았다. B씨도 억울하다며 행정심판을 청구했지만 기각당했다.
영업정지, 과징금 부과 등 행정처분의 적정성을 심사하는 광역시·도의 행정심판 결정이 뚜렷한 기준없이 ‘천차만별’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지역에 따라 결정이 엇갈리다 보니 지난해의 경우 시·도별로 인용률(민원인의 청구가 수용된 비율)이 최대 2.8배나 차이가 났다. 법 집행의 통일성을 떨어뜨리고, 민원인들의 반발만 키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역별 인용률 편차 2.8배
14일 각 지방자치단체에 따르면 지난해 울산시의 행정심판 인용률(부분 인용 포함)은 55.9%로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에서 가장 높았다. 이어 대구시(54.0%), 전라남도(39.0%), 전라북도(35.6%) 등 순서였다. 반면 제주도(20.2%)와 강원도(21.2%), 경상북도(21.3%) 등은 하위권이었다. 울산시 행심위가 제주도보다 민원인의 요구를 세 배 가까이 더 잘 들어준 셈이다.
어느 지자체든 행정심판은 △음식점 등에 대한 영업정지나 과징금 처분 취소 청구 등 식품·위생 사건 △건축허가 거부 취소 청구 등 건설·교통 사건이 다수를 차지한다. 사건 유형도 비슷하다. 그런데도 인용률 차이가 큰 것은 행정심판에서는 행정소송과 달리 위법성 여부 이외 요소도 따지기 때문이다. 법을 어겼더라도 개인의 사정 등을 종합해 법대로 하는 것이 오히려 공익을 해친다면 구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A씨의 경우도 남편이 암에 걸려 자신이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점 등이 고려됐다. 문제는 다소 주관적일 수 있는 이런 판단 기준이 지자체별로 다르다는 것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구제의 폭을 넓히는 것은 긍정적”이라면서도 “공통 기준 없이 행심위원 재량에 따라 지역별로 ‘복불복’처럼 결정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부도 편차를 줄이고자 지역 행심위 관계자들과 간담회 등을 지속적으로 열고 있지만, 각 행심위가 독립된 기관이어서 강제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인용률 50%는 정상 아니다”
법조계에서는 지자체 행심위 인용률이 너무 높은 게 문제라는 목소리도 있다. 한 사립대의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울산 대구 등의 행정심판 인용률이 50%를 넘는다는 것은 공무원이 내린 처분의 절반 이상이 잘못됐다는 것인데, 이는 정상적인 수치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지자체 행심위원들이 대개 지역에서 활동하는 변호사와 교수들로 구성되는 만큼, 이들이 소위 ‘향판(鄕判)’처럼 같은 지역 사람들에 대해 봐주기 심판을 하는 경우도 많다고 분석했다. 행정 처분에 불복하는 또 다른 절차인 행정소송에서 민원인이 승소하는 비율은 10%대에 불과하다.
행정심판이 단심제여서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행심위 결정에 대한 민원인들의 반발이 적지 않은 만큼 일종의 상소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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