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경제현장 곳곳서 가빠지는 숨결, 흘려들어선 안 된다

입력 2019-08-19 17:52  

기업들 경영난 대처 '마지막 수단' 생산 중단 속출
"두드려봤자 안 열린다" 청년들 구직 단념도 급증
금융시장 "국내는 불안, 안전한 달러에 투자" 봇물



경영난을 벗어나기 위해 아예 공장 가동을 중단하거나, 토지·건물 등을 팔아넘기는 ‘벼랑 끝 상장사’가 속출하고 있다는 보도(한경 8월 19일자 A1, 3면)다. 동시에 고용시장에서는 구직 포기자가 급증하고 있고, 금융시장에선 원화자산 대신 달러 등에 투자하는 ‘탈(脫)한국물’ 바람이 거세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주 국무회의 석상에서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은 튼튼하다”며 낙관론을 되풀이한 것과 딴판이다.

대통령은 “가짜뉴스로 시장 불안감을 주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지만, 위기신호가 쏟아지고 있는 경제현장의 모습과 괴리가 크다. 올 들어(1~7월) 생산중단을 공시한 상장사는 9곳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4개)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 주가나 신용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탓에 생산중단은 막바지에 선택하는 비상수단이라는 점에서 한층 깊어진 불황의 골을 가늠해볼 수 있다. 토지·건물·영업권 등을 매각하고 사업부를 양도하며 버티는 비(非)제조업 상장회사도 20곳으로 전년 동기(10곳)의 두 배에 이른다. 제조업에서 시작된 위기가 산업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생존경쟁에 돌입한 기업들의 악전고투는 고용시장에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두드려도 안 열린다”며 낙담해 최근 1년간 구직활동조차 단념한 ‘취업포기자’가 54만4238명(상반기 월평균)으로 역대 최대다. 문재인 정부 출범 첫 해인 2017년부터 3년째 급증하고 있는 점을 볼 때 무리한 최저임금 인상 등 정책실패가 부른 악순환임을 인정할 때가 됐다. ‘알바’를 뛰며 제대로 된 일을 찾는 ‘무늬만 취업자’를 감안한 확장실업률이 11.9%로 단순 실업률(3.9%)의 3배다. 정부는 ‘반(半)구직자(시간 관련 추가취업가능자)’를 포함한 확장실업률은 보조 지표일 뿐이라며 심각성을 인정하지 않지만, 재정으로 떠받치는 고용 증가야말로 지속되기 힘든 땜질 처방이다.

불황의 짙은 그림자는 금융시장에서도 뚜렷하게 감지된다. 경기풍향에 예민한 투자자들은 한국물 대신 해외 상품 투자로 몰려가고 있다. 국내 투자자들이 올 들어 순매수한 미국 주식이 14억1606만달러(약 1조1700억원)어치에 달한다. 달러 주가연계증권(ELS), 달러 부동산펀드 등 안전통화인 달러표시 상품들이 출시와 함께 완판되고 있다. 일본의 무역보복이 본격화된 7월 이후 이런 경향은 더 가속화하는 양상이다. 취약해진 가계경제를 반영해 2분기 이후 가계 대출(빚)잔액도 다시 급증세로 돌아섰다.

일부 호전된 지표를 들어 엄연한 현실을 부인하는 행태는 시장 불안을 키울 뿐이다. 국내 10대 그룹 계열 상장사들도 상반기 영업이익이 반토막 나는 ‘실적쇼크’를 피하지 못한 게 눈앞의 실상이다. 골드만삭스 씨티그룹 등 내로라하는 해외기관 11곳은 애초 2% 중후반으로 예상했던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대로 하향조정했다. 대증요법에 불과한 재정 확대로 위기를 모면하겠다는 안일함부터 탈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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