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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우리가 만난 통일 북조선 아이·늑대의 지혜 2018-08-10 18:47:54
= 마석훈 지음. 경기도 안산에서 탈북아동생활공동체 '우리집'을 운영하며 20년째 탈북아동들과 살아가는 저자가 몸으로 쓴 아이들의 성장기. 젊은 날을 다 바쳐서 탈북아동을 돌보고 함께해온 저자는 '작은 통일' 혹은 '미리 온 통일'을 경험했다. 하지만 분단이라는 시대적 비극을 몸에 새긴...
[연합이매진] 필리핀 팔라완 2018-08-07 08:01:02
팔아 생활한다. 술을 제외한 거의 모든 음식을 외부에서 들여와 먹을 수 있으며 가족이 들어와 함께 생활하는 것도 가능하다. 한국인 관광객이 오면 한국 가요에 맞춰 커버댄스를 선보인다. ▲ 팔라완 야생동물 구조 & 보호센터(Palawan Wildlife Rescue & Conservation Center) 남획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악어를 비롯한...
[연합이매진] 조선 풍류객 송강 정철 2018-07-09 08:01:02
경상도 영일로 유배됐고, 큰형은 함경도 경원으로 유배되던 중 사망했다. 어린 정철은 아버지를 따라 유배지를 전전하며 어렵게 생활했다. ◇ 인생 2막 시작한 자미탄 1551년 왕자(훗날 선조) 탄생에 따른 은사(恩赦, 일종의 특별사면)로 부친이 유배에서 풀려났다. 아버지는 선친의 묘소가 있는 담양 창평 당지산 아래로 ...
[연합이매진] 세계유산 山寺에서의 하룻밤 2018-07-06 08:01:01
추사는 원교체를 무시하고 깎아내렸다. 제주도에 유배 가는 길에 친구인 초의선사가 있는 대흥사에 들른 추사는 이광사의 글씨를 보고는 '저것도 글씨냐, 당장 떼어버려라' 하고는 자신의 글씨를 대신 걸게 했다. 8년의 유배 생활을 마치고 서울로 가는 길에 다시 대흥사에 들른 추사는 과거 자신의 교만을 인정...
다산초당 낀 명품길 좋은 이름 없나요…강진군 공모 2018-06-15 10:53:28
정약용이 강진으로 유배를 온 18년 중 10여 년을 생활하면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500여 권의 방대한 책을 저술한 곳이다. 이곳에 가면 다산 4경이라 불리는 다조, 약천, 정석, 연지석가산을 둘러볼 수 있다. 이어 발걸음을 재촉하면 빼어난 산세와 계곡으로 남도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석문공원에 도착한다. 석문공원은...
[한경에세이] 한 길 사람 속 2018-06-12 18:26:07
붙였다고 한다. 백성을 위해 일하고 싶지만 18년 유배생활을 해야만 했던 다산의 안타까운 심정이 절절하게 묻어 나온다.9362명의 후보자 중 진짜 다산의 마음을 지닌 사람은 누구일까. 여러모로 미로 같은 ‘한 길 사람 속’을 헤아리기 어려운 선거운동 기간을 거쳤고, 6월 13일 그 결과가 나온다. 내 삶의...
[천자 칼럼] 다산이 영암군수에게 준 7계명 2018-06-12 18:11:43
강진 유배 중이던 1814년, 친구 이재의가 영암군수인 아들을 위해 목민관의 자세에 관한 글을 적어 달라고 부탁했다. 다산은 일곱 개 항목에 걸쳐 ‘영암군수 이종영에게 주는 글(爲靈巖郡守李鍾英贈言)’을 지어줬다. 첫 대목에 쓴 고사성어가 ‘육자염결(六字廉訣)’이다.중국 소현령(蕭縣令)이...
[문학이야기(18)] 정도전 《신도가》 2018-06-04 09:02:06
주도한 이인임 등에게 축출돼 전라도 나주 회진현에서 유배생활을 하게 된다. 유배지에서 정도전은 한 촌로에게서 ‘관리들이 국가의 안위, 민생의 안락, 시정의 득실, 풍속의 좋고 나쁨에는 뜻이 없고 녹봉만 축낸다’는 질책을 듣는다. 이때 정도전은 백성을 위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리...
250년전 이광사가 완도에 심은 소나무 '원교목' 명명 2018-05-29 11:24:16
원교 이광사가 완도 신지도 금곡마을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중 심었다고 전해지는 이 소나무는 2015년 완도군 보호수로 지정됐다. 원교는 우리나라 고유 서체인 동국진체를 완성한 조선 후기 문인이자 서화가이며 1762년부터 16년간 완도 신지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다 일생을 마쳤다. 군은 최근 2천만원을 들여 원교목...
[쉿! 우리동네] 광해 숨 거둔 날 유배지 제주선 가뭄에도 비오더라 2018-05-26 11:00:02
광해는 왕위에서 쫓겨나 유배 생활을 시작했다. 광해는 처음에는 강화도로 유배를 갔는데, 이곳에서 자식과 며느리, 폐위된 중전이 모두 세상을 떠났다. 청나라가 조선을 침략한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이듬해인 1637년(인조 15년) 광해는 결국 제주도로 유배를 떠나게 됐다. 광해는 제주에서 위리안치(가시덤불로 사방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