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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포역 일대서 100년전 만세운동 기념행사 주말 개최 2019-03-28 16:09:02
군포장역(현재 전철 1호선 군포역) 앞에 있는 일본 경찰관주재소로 행진했고, 이에 일제는 경찰과 군병력을 동원해 총을 쏘는 등 폭력으로 만세운동 참여자를 해산했다. 군포시는 항일 독립 만세운동 참여자들의 애국심과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2016년 5월 군포역 광장에 높이 11m의 기념탑을 세웠다. hedgehog@yna.co...
[시간여행 1919] 참혹한 학살의 현장, 제암리 2019-03-10 08:01:06
장안면사무소와 우정면사무소를 파괴하고 화수리 주재소를 습격했다. 군중 2천여 명은 총을 쏘는 일본 경찰에 맞서 주재소를 불태우고, 일본인 순사를 처단하기에 이른다. 이에 일본군은 4월 5일 새벽 시위 진원지인 수촌리를 급습해 마을 전체 가옥 42호 가운데 40호를 불태웠다. ◇ 잊을 수 없는 그 날의 참상 제암리에...
[시간여행 1919] 병천에서 만난 '한국의 잔 다르크' 2019-03-10 08:01:03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불렀다. 병천 헌병주재소 헌병들이 달려와 총검을 휘둘렀고, 이후 지원군이 합세해 시위자들을 학살했다. 이날 유관순의 부모를 포함해 19명이 죽고 30명이 부상했다. 유관순은 헌병주재소로 돌진해 "나라를 되찾으려고 정당한 일을 하였는데 어째서 총기를 사용해 내 민족을 죽이느냐"며 항거했...
이낙연 총리, 제암리 3·1운동 순국유적지 방문 2019-03-02 18:27:29
일제 무단통치의 상징인 면사무소와 주재소를 파괴하고, 순사를 처단했다. 이에 일제는 제암리 주민 20여 명을 교회에 가두고 총살한 뒤 불을 질렀다. 이후 이 사실은 캐나다 선교사 스코필드 박사의 보고서와 임시정부 파리위원회에서 발간한 책자 등을 통해 외부에 알려지면서 일제의 무단통치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감을...
'강원 곳곳 퍼지던 만세 함성'…도내 항일 유적지를 찾아서 2019-03-01 07:00:00
주재소를 에워싸고 일제 경찰에게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요구하자 경찰서장이 "돌아가겠다"고 굴복했고, 이들은 다음날 양양읍에 모이기로 하고 해산했다. 6일, 7일 이틀 사이에는 농민 1천500여 명이 양양경찰서를 습격해 애국자들의 석방을 요구했고, 7일 밤에는 의병 출신 박춘실이 이끄는 서면 농민 1백여 명이...
[#꿀잼여행] 제주권: "만세! 만세! 만세!…올레길 걸으면 들리는 거센 함성 2019-02-28 11:00:06
중문주재소를 습격, 물건을 때려 부수고 불을 질렀다. 당시 많은 이들이 옥고를 치렀고 일부는 옥사했다. 올레길을 걸으며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알고 간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올레길 8코스는 길게 뻗은 해안길을 따라 걷는 바당올레 코스로 5∼6시간 정도 소요된다. 8코스의 하이라이트는 서귀포시 대포동에서 중문동...
[3·1운동 유적지를 가다] ⑬제주 조천·법정사·세화장 2019-02-24 06:00:38
주재소를 습격, 물건을 때려 부수고 불을 질렀다. 이 과정에서 일본 경찰의 연락을 두절하기 위해 전선을 절단하기도 했다. 이 무장항쟁의 참여자는 약 700명으로 추정된다. 이 운동으로 66명이 검찰에 송치됐고, 재판 전에 2명이 옥사했다. 재판에서는 31명이 최고 10년에서 최하 6개월의 징역형, 15명이 벌금형, 18명이...
[3·1운동 유적지를 가다] ⑩울산 3대 성지 언양·병영·남창 2019-02-23 06:00:22
긴급 출동한 일본 경찰이 주동 인물들을 언양주재소로 강제 연행한 후엔 주재소로 몰려가 투석전을 벌이며 격렬히 저항했다. 그러나 시위대는 언양 성터 위에서 가해진 일제의 무차별 사격에 해산할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만세 시위 참가자 중 17명이 다치고 26명이 경찰에 체포됐다. 체포된 사람 중 16명은 징역형을...
[3·1운동 유적지를 가다] ⑨경남 도화선 함안 칠북 연개장터 2019-02-23 06:00:13
"독립 만세"…헌병주재소 습격·수탈 장부 소각 (창원=연합뉴스)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경찰서에 다가와 도끼, 낫 등을 가지고 청사로 뛰어들었다. 이를 제지해도 듣지 않고 점점 광폭화해 공포(탄)를 쐈지만, 더 사나워져 실탄을 발사해 폭민을 격퇴하고 진정시켰다. 이 발포로 폭민 중 즉사한 사람이 4명, 부상자는...
[3·1운동 유적지를 가다] ⑧부산 일신여학교·구포장터 2019-02-23 06:00:11
경찰은 독립선언서를 뿌리던 주동자 11명을 곧바로 주재소(현 구포1치안센터)로 연행했다. 이 소식을 들은 상인들은 주재소로 달려가 분노했다. 당시 일본 군경 3명과 한국인 경찰 1명이 중상을 입었고, 시위 군중에서도 9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재판에 회부된 인물은 42명으로 대부분 20∼30대 청년들이었다. 낙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