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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성민 칼럼] 어떻게 키운 경제인데, 폭망을 운운하는가 2024-09-19 17:42:34

    시절 경제수석인 오원철의 표현대로 한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해다. 60년이 지난 지금 1억달러를 수출하는 데 드는 시간은 1시간15분 정도다. 박정희가 두 손 들고 무덤에서 뛰쳐나올 일이다. 위기는 창조적 파괴를 가속한 계기가 됐다. 외환위기는 부의 재편과 함께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점이었다. 국내에서 외화벌이에...

  • [조일훈 칼럼] 광복, 그 이상의 대한민국 해방일지 2024-08-26 17:44:25

    경제관료로 손꼽혔던 오원철 경제수석이 방위산업을 중화학공업 육성과 연계하자는 ‘발상의 전환’을 제안했다. 유사시 언제든 군수산업으로 전환할 수 있는 철강 기계 조선 자동차 산업 등을 중점 육성하되 민간 기업을 선정해 하나씩 맡기자는 것이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탱크 국산화와 철도 기관차는 현대그룹 정주영...

  • [책마을] 새벽 4시에 시장으로 출근한 경제 관료들 2024-04-26 17:57:22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국보’라고 부른 오원철 제2 경제수석과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제수석으로 공정거래법 제정을 주도한 김재익도 만나 볼 수 있다. 다시 ‘경제 관료의 시대’로 되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혹시 아는가. 앞만 보고 달린 그들의 행적을 되짚다 보면 고물가, 고금리, 저성장 시대의 출구가...

    경제,관료,장관,오전
  • [천자칼럼] K방산 수출 르네상스 2024-02-07 17:53:58

    자주국방을 뼈저리게 느낀 박정희 대통령은 오원철 상공부 차관보를 제2경제수석에 임명하고, 예비군 20개 사단을 무장시킬 수 있는 무기 개발을 지시했다. 오 수석은 “군대식 명령 하달이어서 거수경례를 할 뻔했다”고 회고했다. ‘번개사업’이 시작됐고, 불과 한 달여 만에 소총, 기관총, 박격포, 로켓포가 만들어졌...

  • [취재수첩] 정부, 민간 전문가 더 영입해야 2021-02-04 17:12:09

    보냈다. 한국 산업화의 주역으로 손꼽히는 오원철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세상을 떠난 것에 대한 평가였다. 오 전 수석은 국내 최초 자동차회사인 시발자동차의 공장장을 지낸 뒤 5·16 군사정변 이후 정부에 발탁돼 경제정책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한 경제부처 관료는 “기업인 출신 오원철 한 사람이 한국의 50년 먹거리를...

  • [천자 칼럼] 떠나가는 '한강의 기적' 주역들 2019-05-31 17:58:10

    오원철 당시 상공부 공업국장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브리핑한 요지다.이렇게 해서 석유화학공업은 포항제철 건설과 함께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핵심 사업이 됐다. 1972년 국내 최초의 울산석유화학단지가 완공됐다. 청와대 제2경제수석비서관이 된 오원철 씨는 중화학공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창원 울산 온산 구미...

  • [ 분야별 송고기사 LIST ]-경제 2019-05-31 08:00:02

    기틀 마련한 오원철 전 경제수석 별세 190530-0949 경제-018316:35 '청주공항 인프라 확충하자'…민주당·충북도 힘 모은다 190530-0959 경제-018416:44 딥마인드 '인간 능가하는 게임AI' 공개…"플레이어간 협력 가능" 190530-0967 경제-018516:49 현대중공업, 주총 예정대로 31일 개최…노조와 충돌 우려...

  • 오원철, 조국 근대화 꿈 이루고 잠들다 2019-05-30 18:02:40

    기자 ] ‘한국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의 효시’인 오원철 전 청와대 제2경제수석비서관이 30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1세. 오 전 수석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국보(國寶)’라고 부르던 관료였다. 1960~197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며 산업화를 이끈 주역이라는 평가를 받았다.대통령이...

  • 개발 '올인'한 박정희…정부를 '세계 경영' 위한 商社처럼 바꿨다 2019-05-10 17:50:53

    이는 국가경제를 더욱 자립적인 구조로 이끌었다.오원철은 상공부 관료로 1968~1972년 석유화학공업단지 건설과 뒤이은 중화학 공업화에서 실무 책임자 역할을 했다. 그는 고도성장을 이끈 박정희 정부의 행동원리를 ‘엔지니어링 어프로치’라고 정의했다. 이는 거대 공장의 건설을 위해 어떤 방법이 가장...

  • [현승윤 칼럼] 수출주도성장 vs 소득주도성장 2019-04-24 18:01:24

    한다”(오원철 당시 청와대 경제 제2수석비서관)며 밀어붙였다. 한국이 지금의 산업 포트폴리오를 갖춘 것은 당시 정부가 ‘정경유착의 굴레’를 짊어진 덕분이다.대신 대기업 주식을 골고루 분산하는 정책을 폈다. 1972년 제정된 기업공개촉진법이다. 1980년대 주식시장의 폭발적 성장은 분배에 대한 당시...